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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인데 마음은 여전히 겨울”…요원한 이태원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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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조금씩 늘어나는 거 같은데 매출은 여전히 들쭉날쭉합니다. 봄이 왔어도 마음은 겨울이에요.”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세계음식문화거리 일대에서 지난 16일 만난 김모씨가 한 말이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그는 이날 들어올 음료·주류 배송 탑차를 기다리면서 “주 6회 배송을 (이태원 참사 이후 손님이 줄어서) 주 3회로 줄였다”며 "이태원 참사 이후 몇 달째 이러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행한지 5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16일 저녁 이태원 상권은 여전히 한산했다. 문희철 기자

이태원 참사가 발행한지 5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16일 저녁 이태원 상권은 여전히 한산했다. 문희철 기자

[르포] 매출 57%나 감소한 이태원 상권 가보니 

이태원 참사 이후 이태원 상권 카드 매출액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 이태원 상권 카드 매출액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행한 지 5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이날 이태원 거리는 여전히 한산했다. 서울시 추정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직전 대비 이태원 지역 유동인구는 29.0% 감소했고, 인근 지역 6개 동 상권 총매출은 57.1% 감소했다. 실제로 평일 낮 대로변 커피숍에 앉아있는 손님은 십여명이 채 되지 않았고, 골목 음식점은 상당수가 낮에 영업하지 않았다.

지난해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해밀턴호텔 옆 골목길은 시민이 붙인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 이 일대는 관광객이 가끔 사진을 찍을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한산하다.

이태원로를 건너 남쪽으로 한 블록 아래 퀴논길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이 300m, 폭 10m가량 퀴논길은 베트남 퀴논시를 주제로 한 테마 거리다. 세계 각국 음식점이 자리 잡아 이태원 참사 이전까지 인파가 몰렸다. 하지만 이날은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대부분 텅 비어있었다.

상권 침체가 장기화하자 상인들도 떠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대로변에도 문 닫은 상가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여기서 5년 넘게 고깃집을 운영했다는 이모씨는 “예전엔 오후 4~5시부터 손님이 몰렸지만, 지금은 파리만 날린다”며 “옆집 월세가 밀렸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요즘 문을 안 열고 (노천 테이블에) 먼지가 쌓인 걸 보니 아마도 장사를 접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핼러윈데이에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 문희철 기자

지난해 핼러윈데이에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 문희철 기자

“공연·행사 있으면 손님 갑자기 확 늘어”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 시민들이 참사를 기억하며 붙여둔 메모. 문희철 기자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 시민들이 참사를 기억하며 붙여둔 메모. 문희철 기자

다만 요즘엔 분위기가 다소 좋아지고 있다는 상인도 있다. 이태원로 골목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연말 대비 손님이 30% 정도 늘어난 것 같다”며 “날이 풀리면서 주말에 한해 손님이 확실히 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용산구는 지난달 말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이곳에서 각종 공연을 개최한다. 문화예술 행사와 맞물려 코로나19로 인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하면서 특정 행사일엔 손님이 몰릴 때도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과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이 맞붙었던 지난 10일에는 “오랜만에 주점이 활기를 띠었다”는 상인도 있었다.

세계음식거리 동편 끝에서 한강진역 방면으로 약 500m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리움미술관은 평일 한낮인데도 관람객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미술관 주차장은 만차였고, 일대에 불법 주차한 차도 꽤 보였다. 리움미술관이 한국·일본·중국 조선백자를 한자리에서 망라해 마련한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찾은 사람이다.

지난 16일 저녁 이태원 퀴논길의 한산한 모습. 문희철 기자

지난 16일 저녁 이태원 퀴논길의 한산한 모습. 문희철 기자

이태원 상권 지원 나선 정부·지자체

지난 17일 자정 무렵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이태원 참사 이전까진 인파로 북적였던 골목이다. 문희철 기자

지난 17일 자정 무렵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이태원 참사 이전까진 인파로 북적였던 골목이다. 문희철 기자

정부와 자치단체는 이태원 상권 회복을 위해 전방위적 지원에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 15일부터 ‘용산구 공공배달 페이백 이벤트’에 돌입했고, 중소벤처기업부도 같은 날부터 지자체·공공기관·상인회·기업과 ‘헤이, 이태원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태원 상권 활력 회복을 위한 현장간담회도 열렸다.

기업도 동참했다. 신한은행 배달 애플리케이션 ‘땡겨요’는 다음 달 30일까지 용산구 소재 가맹점에서 서울시 상품권으로 1만5000원 이상 주문 결제 시 3000원 할인쿠폰을 제공하고,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이태원 외식업종 소상공인을 위해 라이브커머스를 조만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태원 상권 내에서 20% 할인율을 적용한 이태원상권회복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56만원을 지불하면 70만원 어치 상품권을 구매할 수 있다. 유태혁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부회장은 “서울시가 이태원상권회복상품권을 발행하면서 편의점·빵집 등 일부 업종은 점차 손님이 늘어나는 모습”이라며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은 이태원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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