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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계라며 '조선학교'만 무상화 제외" 비판한 다큐 '차별'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소송의 현장을 실감 나게 담은 다큐멘터리 '차별'이 22일 개봉한다. 다큐에 나오는 재일조선인 연극의 한 장면. 한국에서 활동 중인 재일교포 배우 강하나다. 사진 디오시네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소송의 현장을 실감 나게 담은 다큐멘터리 '차별'이 22일 개봉한다. 다큐에 나오는 재일조선인 연극의 한 장면. 한국에서 활동 중인 재일교포 배우 강하나다. 사진 디오시네마

조선학교가 일본의 고교 무상화에서 배제된 것은 명백한 차별이고 사상‧이념을 떠나 인권, 교육받을 권리의 침해입니다.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차별’(22일 개봉)을 만든 김지운(49) 감독의 말이다. 지난 9일 시사 및 간담회에 공동 연출 김도희(43) 감독과 함께 한 김지운 감독은 일본 정부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한국사회가 재일조선인에 무관심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왜 조선학교에 우리(남한)는 이렇게 무관심했던 거지, 생각해보면 어쨌든 북한을 지지한다는 것”이라며 “남과 북이 갈라지던 시기에 우리가 재일조선인을 동포라고 인정하고 북한처럼 지원했다면, 지금 조선학교를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계 학교라고 비판할 일도 없었다. 해외 동포를 나 몰라라 한 남한의 무관심이 먼저였다”고 했다. 또 “왜 북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북을 지지한다고 욕하고 차별받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율배반적인 게 아닌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22일 개봉…일본 정부에 소송 학생, 법조인 등 다뤄 #"일본인, 재일동포 가장 괴롭히지만 가장 많이 돕기도" #"조총련계 학교라며 무관심한 한국 정부도 문제" #조선학교·변호사들 투쟁 담아

日 고교 무상화…조선학교만 배제

‘차별’은 부산에서 독립제작사를 차려 재일조선인‧고려인 등 해외동포를 주로 취재해온 두 감독이 첫 장편 ‘항로-제주, 조선, 오사카’에 이어 재일조선인을 두 번째로 조명한 작품이다. 일본 내 해묵은 재일조선인 차별을 2010년부터 일본에서 실시된 고교 수업료 무상화 제도를 중심으로 다뤘다. 당시 무상화 대상에 현지 고교는 물론 외국인 학교까지 포함됐지만, 조총련계 조선학교들만 제외되자, 학생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사건이다.

아이치‧오사카‧히로시마‧후쿠오카‧도쿄의 5개 조선학교 학생들이 원고가 되어 일본 현지 변호사들, 시민단체와 함께 재판에 뛰어든다. 한복 교복을 입고 우리말‧문화를 배워온 정체성, 배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2017년 오사카 1심에서는 승소했지만, 이듬해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힌 뒤 2021년 모든 지역 최종심에서 패소했다. ‘차별’은 2019년 규슈 조선학교 소송까지 2년여 과정을 집중 조명했다.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 지원금이 조총련 등 다른 용도로 흘러들 우려가 있다고 주장해온 터다. 일각에선 똑같은 세금을 내는 재일조선인의 인권침해이자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재일동포 및 일본 변호사들이 조선학교 변호에 뛰어들며 화제가 됐다.
 그간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돼 왔다. 재일조선인 이민사를 다룬 미국 드라마 ‘파친코’(애플TV)의 주연 배우 윤여정(75)도 “자이니치(在日‧재일조선인)에 대해 잘 몰랐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다큐멘터리 '차별'의 한 장면. 2019년 규슈 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 1심 소송 판결 당시 담당 변호사가 일본어와 한국어로 결과를 적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디오시네마

다큐멘터리 '차별'의 한 장면. 2019년 규슈 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 1심 소송 판결 당시 담당 변호사가 일본어와 한국어로 결과를 적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디오시네마

김도희 감독은 “재일동포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도 일본사람이지만, 가장 많이 도와주는 분도 일본분들”이라며 "많은 일본 변호사들이 긴 시간 조선학교 변호를 맡아주고 ‘절대 지는 싸움 아니다. 이기는 싸움’이라고 힘 북돋워 주는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과 한국이 부끄러웠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기 위한 역할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코로나 때 日 조선학교 차별 심해졌죠"

조선학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건너간 조선인들이 해방 후 세운 국어강습소를 모태로, 폐교령 시기를 딛고 70년 이상 명맥을 이어왔다. 김지운 감독은 “외할아버지 6형제가 일제 때 오사카에 20년 동안 살다 1946년께 귀국하셔서, 외삼촌으로부터 재일동포가 차별받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면서 “재일동포의 고충이 먼 얘기 같지 않아 기록하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일본 내 차별은 더 거세졌다”고 했다. “조선대 학생들을 긴급지원금 제도에서 배제시키고, 코로나 비대면 수업을 위한 1인 1 PC 지원도 조선학교만 배제했다”면서다. 일본 사이타마시는 관내 유치원과 보육원에 대한 마스크 배급 과정에서 조선학교 유치부만 뺀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화 출연진 가운데 조선학교 출신 배우 강하나는 한국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7)에서 일본군에 끌려간 14살 소녀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에서 ‘우리(한국말)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인이라고, 김치 냄새 난다고 차별당한 친구들도 있다”며 “차별받지 않으려고 일본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안타깝다”고 했다.

日 시민단체 대표 "일본 식민지배가 차별 근원" 자성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차별' 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 공동 연출한 김지운(왼쪽부터), 김도희 감독을 비롯해 다큐에 출연한 조선학교 출신 배우 강하나, 규슈 조선 고급학교 졸업생이자 규슈 조선 고급학교 고교무상화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김민관 변호사,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사노 미치오 공동 대표(전 도쿄쥰신대학 교수)가 참석했다(왼쪽부터). 사진 디오시네마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차별' 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 공동 연출한 김지운(왼쪽부터), 김도희 감독을 비롯해 다큐에 출연한 조선학교 출신 배우 강하나, 규슈 조선 고급학교 졸업생이자 규슈 조선 고급학교 고교무상화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김민관 변호사,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사노 미치오 공동 대표(전 도쿄쥰신대학 교수)가 참석했다(왼쪽부터). 사진 디오시네마

간담회에 참석한 시민단체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사노 미치오 공동 대표(전 도쿄쥰신대학교수)는 “일본사회가 역시 바뀌어야 한다. ‘스미마셍(すみません, 미안합니다)’이란 말은 많이 했지만 실제 사죄한 것이 없다”며 “일본이 조선 식민지 지배를 한 것이 지금까지 여러 차별의 근본 원인”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김지운 감독은 “조선학교 하면 재일조선인 아이들이 조총련에 지배받는 학교라는 인식이 있는데 요즘은 1970~80년대처럼 사상의 논리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영화 말미 조선학교 학생이 인터뷰에서 북한을 ‘우리나라’로, 한국은 ‘고향’으로 표현한 데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바로 그 말이 조선학교 친구들의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한을 지지하면 차별이 부당하고 북한을 지지하면 차별받는 게 정당한가 하는 문제를 영화를 보시면서 고민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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