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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정말 꾀죄죄하다

중앙일보

입력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꾀죄죄하다. '마음 씀씀이나 하는 짓이 매우 좀스럽고 옹졸하다'는 뜻이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말 라디오에서 했던 이 말의 반향이 꽤 컸다. 직설적 평론가인 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억울하면 굳이 (체포동의안에) 목 맬 필요가 없다. 정치를 계속 하려면 좀 감동적인 모습이 있어야 되는데, 대선에 지고 인천에 보궐선거 나가고 한 모양들이 어쩐지 좀 꾀죄죄해 보인다. 국민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는 정치를 했으면 한다"고 했다. 또 "영장실질심사를 받아 구속되면 또 어떠냐. 그 정도 모험도 안 하고 자꾸 거저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며 자신을 내던지는 큰 정치를 주문했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인 유 전 총장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하자 "하도 기가 차서" 피식 웃었던 인물이다. 방청석의 모친이 그 순간 졸고 있었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떠돈다.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언을 마다 않는 거침없는 태도에 '엽기 수석'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에게 꾀죄죄하지 않은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어쨌든 현재 이 대표에게 가장 적확한 표현인 것 같아 무릎을 쳤다. 주변 인물의 다섯 번째 극단적 선택에도 꿈쩍 않는 이 대표를 지켜보자니 유 전 총장의 말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집착과 무책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본인은 물론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꾀죄죄 지수'가 폭발적으로 치솟을지 모른다.

 지난주엔 국민의힘 대표 경선전이 막을 내렸다. 후보 4인의 성적표는 김기현 53.93%, 안철수 23.37%, 천하람 14.98%, 황교안 8.72% 순이었다. 친윤계의 일방적 응원을 업은 김기현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경선을 끝내며 체면치레를 했다. 천하람 후보는 이준석계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뛴 불리함 속에서도 유망주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황교안 후보는 꼴찌였지만 총선 부정선거 의혹 외에도 이슈를 제기할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경선을 거치며 위상이 쪼그라든 이는 안철수 후보가 유일해 보인다. 23.37%란 득표율이 숫자 그 자체보다 더 왜소해 보이는 데엔 경선 전·후반이 판이했던 그의 태도가 일조했다.

대선 도전했던 이재명과 안철수
울림 없는 좌고우면 태도로 위기
생존에 급급한 정치는 한계 뚜렷

 경선 초반 안철수는 친윤계의 집단 구타 대상이었다. "실체도 없는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란 윤석열 대통령의 직격탄이 그를 향했다. 그동안 존재감 제로였던 이진복 정무수석도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란 대한민국 경선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날렸다. 휘청한 안 후보는 거짓말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차가운 돌 위에서 3년을 앉아 참고 견디면 결국 돌도 따뜻해진다"는 초인적 인내심으로 때를 기다리다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연상됐다. 하지만 끝까지 참지는 못했다. 대통령실 행정관 경선 개입 논란이 불거진 뒤 발끈했다. 대통령실 수석을 고발했고, 이념 성향이 판이한 황교안 후보의 손을 잡고 "대여 투쟁"까지 다짐했다. 정치권에선 "천하람의 추격세를 뿌리치고 2위를 사수하기 위한 행동"이란 분석도 나왔다. 12년 전 서울시장 후보직을 5% 지지율 후보에게 양보했던 기개는 어디로 갔을까. 결과적으로 '모'도 아니고, '도'도 아닌 어정쩡한 신세가 됐다. 당의 분란을 막기 위해 침묵했다는 명분도, 대선 출마를 위해 절실한 친윤계의 마음도 모두 놓쳤다.

 전직 대통령 후보 이재명과 안철수가 동시에 위기에 직면했다. 약속이나 한 듯 눈앞의 이익에 좌고우면하다 큰 것을 잃을 처지에 몰렸다. 위기를 스스로 만든 공통점도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눈앞의 생존에 급급했던 정치인은 늘 한계가 뚜렷했다. 감동과 울림의 대반전 드라마를 써도 대선 재도전이 가물가물한 두 사람인데, 현재 모습은 참 꾀죄죄하다.

글=서승욱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