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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돌리던 위구르족 부부, 서울대∙성균관대 의학박사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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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사귐은 국민 간의 친함에 있다(國之交在於民相親)”
한중이 또 다른 30년을 여는 첫해 2023년을 맞아
‘이사 갈 수 없는 영원한 이웃’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에 자리잡은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중국 신장 출신으로 성균관대와 서울대서 각각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위구르족 부부 김미나(왼쪽, 굴미나 아부두르이무·39)와 마이단(매이단강 오보이·39)이 지난달 21일 서울대학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중국 신장 출신으로 성균관대와 서울대서 각각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위구르족 부부 김미나(왼쪽, 굴미나 아부두르이무·39)와 마이단(매이단강 오보이·39)이 지난달 21일 서울대학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한 명도 하기 힘든 한국 명문대 의학박사 학위를 두 사람 다 가진 '초 엘리트' 중국 부부가 있다. 중국 신장(新疆)에서 온 위구르족 남편 마이단(매이단강 오보이᛫39,麥爾旦᛫吾甫爾)과 아내 김미나(굴미나 아부두르이무᛫39,古麗米娜᛫阿布都熱依木)의 이야기다. 올해 벌써 한국 생활 13년차라는 마이단과 김미나 부부는 이국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유창한 한국어로 그간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신비로운 서역 땅 신장을 떠나 서울에 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서 두 번의 사기, 쉽지 않은 학비 마련, 좌충우돌 육아 스토리까지, 타향살이의 설움을 덜어준 기적같은 은인들의 도움과 한·중 관계에 대한 속마음 등 지난달 21일 화제의 중국 '박사 부부'를 만나 그 풀스토리를 들어봤다.

중국 신장 위구르족 의학박사 부부 김미나와 마이단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첫째 딸 마이지나(麥祖娜·10), 둘째 딸 마이위나(麥維娜·5), 남편 마이단, 아내 김미나. [사진 본인제공]

중국 신장 위구르족 의학박사 부부 김미나와 마이단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첫째 딸 마이지나(麥祖娜·10), 둘째 딸 마이위나(麥維娜·5), 남편 마이단, 아내 김미나. [사진 본인제공]

해외유학을 꿈꿨던 의대 커플, 미래 내다보고 한국행을 결심하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마이단 : 한국 이름은 마이단이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왔다. 고향에서 신장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는 2010년에 처음 왔다. 서울대학교에서 성형외과학 박사를 졸업하고 지금은 서울대 의학연구혁신센터의 박사후 연구원이다.   
김미나 : 저도 남편과 같은 중국 위구르족이고, 한국에서는 김미나라고 부른다. 같은 해 남편보다 6개월 정도 늦게 한국으로 들어왔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삼성병원 피부과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 성균관대와 서울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중국 신장 위구르족 부부 김미나(왼쪽, 굴미나 아부두르이무·39)와 마이단(매이단강 오보이·39)의 의사 프로필 사진. [사진 본인제공]

한국 성균관대와 서울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중국 신장 위구르족 부부 김미나(왼쪽, 굴미나 아부두르이무·39)와 마이단(매이단강 오보이·39)의 의사 프로필 사진. [사진 본인제공]

둘은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됐나?  
마이단 : 스물두 살쯤 신장의과대학에 다닐 때 만나서 결혼했다. 당시 둘 다 의사가 되고 싶었고, 또 해외에서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싶다는 목표가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의대에 가는 게 꿈이었는데, 졸업하고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사는 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둘이 함께 외국에 나가 공부를 더 하자고 마음먹었다.  
한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마이단 : 대학교 때 유럽에서 온 한 교수님이 한국에 가서 성형외과를 전공해보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중국은 성형외과 의사가 많이 부족하니, 10년 후 분명 잘될 거라며 한번 고민해보라고 하시더라. 졸업을 앞두고 아내의 고향에 있는 인민병원에서 1년동안 함께 인턴을 했는데, 가보니 실제로 병원에 '화상과'만 있고 성형외과는 따로 없었다. 그때 중국에 이 분야의 인재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했고, 이는 곧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라고 믿게 됐다. 지금 생각하니 그 교수님은 우리가 한국에 오게 된 계기를 만들어 주신 정말 고마운 분이다.  
은사의 추천이 있기 전에는 한국에 따로 관심이 없었나?
마이단 : 원래는 일본에 가서 심혈관 분야를 전공하려고 했다. 그래서 방학 때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서 온 교수님께 따로 일본어를 배운 적도 있다. 의대에서는 제2외국어 공부가 필수라 둘 다 일본어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성형외과는 한국이 더 알아준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지막에 한국행을 택했다. 그 당시 이미 모교에 일본 유학을 다녀온 교수님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중국 신장 출신 의학박사 부부 김미나와 마이단의 가족사진. [사진 본인제공]

중국 신장 출신 의학박사 부부 김미나와 마이단의 가족사진. [사진 본인제공]

학비와 양육비 부담에 남편 먼저 학위 따고 뒤따라 의대에 들어간 아내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어를 배운 적이 있나?
마이단 : 의대 재학 시절 3~4년 동안은 계속 일본어를 배웠고, 마지막 학년 때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신장대학교에 한국 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었다. 아내는 약 10개월, 나는 약 3개월 정도 배웠다. 한국에 막 왔을 때 한글을 읽고 쓰기만 가능한 수준이었고 말은 잘 못했다.  
한국에 와서는 한국어를 어떻게 배웠나?  
마이단 : 나는 서울대 어학당에서 2년, 아내는 성균관대 어학당에서 1년 반 정도 공부했다. 당시 나는 서울대 의대에 꼭 가고 싶었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다. 영어와 한국어를 둘 다 잘해야 했다. 어학원에 계속 다니면서 지원했는데, 두 번이나 떨어졌지만 계속 문을 두드렸고, 세 번째에 드디어 서울대에 합격했다. 내가 먼저 석·박사과정을 마쳤고, 아내는 나중에 성균관대 의대에 입학해서 얼마전 드디어 졸업식을 했다.    
마이단이 먼저 대학원에 입학한 이유가 있나? 
김미나 : 둘이 동시에 학교를 다니기엔 학비가 너무 비쌌다. 장학금도 입학 후 2학기부터 신청할 수 있었다. 서울대는 국립이라 그나마 학비가 좀 저렴한 편이었지만,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남편 뒷바라지를 했다. 나중에 내가 공부할 때는 남편이 많이 도와줬다.      
마이단 : 부모님이 중국에서 공무원으로 계시는데, 월급이 60만원 정도였다. 유학 오려고 둘이 고향에서 틈틈이 돈을 모으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중국 신장 출신으로 성균관대와 서울대서 각각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위구르족 부부 김미나(왼쪽, 굴미나 아부두르이무·39)와 마이단(매이단강 오보이·39)이 지난달 21일 서울대학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중국 신장 출신으로 성균관대와 서울대서 각각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위구르족 부부 김미나(왼쪽, 굴미나 아부두르이무·39)와 마이단(매이단강 오보이·39)이 지난달 21일 서울대학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출국 전 유학 사기만 두 번, 한국 와선 학비 벌러 전단지 알바도

한국에 오기 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김미나 : 유학 준비 당시 중국에서 사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형편이 어려워 통장 잔고증명서 같은 증빙을 중개업자에게 맡겼는데, 수수료만 떼어가고 가짜 서류를 발급해줬다. 그래서 결국 직접 처리하는 게 낫겠다 싶어 남편이 먼저 한국에 들어왔고, 나는 6개월 후에 뒤따라왔다.      
한국에 와서는 주로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했나?
김미나 : 막 한국에 왔을 때는 언어를 몰라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파트 16층부터 집집마다 한 장씩 붙이며 내려온 적도 있다. 나중에는 식당 같은 데서 일했다. 일이 힘들긴 했지만 그때 한국 사람들과 많이 소통하면서 다른 중국 친구들보다 한국어가 훨씬 빨리 늘었다. 외국인 학생 기숙사에서 중국어를 계속 쓰다보니 이러다간 한국어를 영영 못 배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초반 3개월 동안은 거의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매일 도서관에서 자고, 아침에만 숙소에 들어가서 씻은 뒤 수업하러 가는 식이었다. 나중에는 도서관 경비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 아침밥을 사주신 적도 있다.  
한국어를 배울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마이단 : 일본어를 배우다가 갑자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처음에는 너무 헷갈리고 비슷하게 들렸다. 하지만 한자를 많이 알아서 그런지 한국어를 금방 습득했다. 6개월쯤 배우니 한국말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 시작했다.  
김미나 : 나는 3개월만에 그 소리를 들었다. 사실 위구르어와 일본어, 한국어 모두 알타이 어와 관련이 있다 보니 유사점이 많다고 느꼈다. 지금은 우리 둘다 한국어가 제일 편하다.    
중국 신장 출신 의학박사 부부 김미나와 마이단의 첫째 딸 마이지나가 KBS 동요 프로그램 '누가누가잘하나'에 출연해 노래하고 있는 모습. [사진 본인제공]

중국 신장 출신 의학박사 부부 김미나와 마이단의 첫째 딸 마이지나가 KBS 동요 프로그램 '누가누가잘하나'에 출연해 노래하고 있는 모습. [사진 본인제공]

둘째 딸 자기가 한국인이라 믿어, 미국가선 김치 찾는 '찐 한국인' 된 부부

두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나?  
김미나 : 첫째 딸은 2013년 생이고, 둘째 딸은 2018년에 태어났다. 큰 딸은 명동 화교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고, 둘째는 한국 어린이집에 다닌다. 두 아이 모두 한국어가 유창하다. 중국어는 학교에서 배우고 있고, 위구르어는 아이들이 말은 못해도 잘 알아들었으면 해서 집에서 최대한 많이 쓰고 있다. 큰 딸은 어렸을 때 중국에서 부모님이 잠깐 키워 주셔서 중국에 대한 이해가 좀 있는 편인데, 이제 5살인 둘째는 자기가 완전히 한국인인 줄 안다. 
중국 신장 출신 의학박사 부부 김미나와 마이단의 둘째 딸 마이위나. [사진 본인제공]

중국 신장 출신 의학박사 부부 김미나와 마이단의 둘째 딸 마이위나. [사진 본인제공]

한국에 막 왔을 때 음식은 잘 맞았나?
마이단 : 비빔밥 외에는 먹을 게 없었다. 김치랑 백반만 주로 먹었다. 돼지고기를 안 먹고 매운 것도 잘 못 먹다 보니 처음엔 좀 힘들었다. 지금은 거의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 학회를 갔는데 매일 스테이크, 빵만 먹다가 한식집에 가서 김치를 먹으니 그제야 살 것 같더라.  
김미나 : 지금은 애들도 한국 음식에 익숙해졌다. 할랄 음식점을 가끔 가기도 하는데, 지금은 주로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해먹는다. 훠궈(샤브샤브)같은 중국음식점도 자주 간다. 이태원에서 양고기를 사와서 직접 양꼬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김미나는 이날 인터뷰에서 둘째 아이 출산 당시 산후조리를 도와준 은인인 친구 어머님(왼쪽 네번째)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사진 본인제공]

김미나는 이날 인터뷰에서 둘째 아이 출산 당시 산후조리를 도와준 은인인 친구 어머님(왼쪽 네번째)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사진 본인제공]

산후조리 도와준 친구 어머니, 한달 된 젖먹이 맡아준 어린이집 원장에 무한 감동

타지에서 아이들 키우려면 힘든 일이 많을텐데.
마이단 : 둘째가 막 태어났을 때 봐줄 사람이 없어서 37일된 아가를 어린이집에 보내야했다. 의대는 수술이나 진료가 다 끝난 저녁 6시 이후에 미팅이 많은 편이다. 아이 픽업 후 지하철역에서 '바톤 터치' 하듯 아내에게 넘겨주고 급하게 미팅에 간 적도 많다.  
김미나 : 2017년 삼성병원에 지원했을 때, 이미 둘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알리면 안될 것 같아 일부러 펑퍼짐한 옷을 입고 면접을 봤다. 2018년 2월 초 출산일 직전에 드디어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기쁨과 동시에 만감이 교차했다. 3월부터 바로 출근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첫째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갓난아기였던 둘째를 흔쾌히 받아 주셨다. 삼성병원에서 일할 기회를 잡은 건 다 원장님 덕분이다.  
인덕이 많은 것 같다.  
김미나 : 사실 둘째 출산 당시 부모님이 못 오셔서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산후조리를 도와줄 사람이 남편밖에 없었다. 그런데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 친구 어머님이 이를 아시고는 아기 옷 한보따리를 들고 우리집으로 오셨다. 집에 머무시며 손수 미역국도 끓여 주시고 친자식처럼 나를 알뜰하게 챙겨 주셨다. 정말 너무 감동이었다. 아기도 거의 키워주다시피 하셨다. 둘째는 이 친구 어머님을 자기 할머니라고 생각한다.  
김미나는 이날 인터뷰에서 둘째 아이 출산 당시 산후조리를 도와준 은인인 친구 어머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사진 본인제공]

김미나는 이날 인터뷰에서 둘째 아이 출산 당시 산후조리를 도와준 은인인 친구 어머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사진 본인제공]

한국 지도교수 도움에 혁혁한 연구 성과 거둬, 훗날 고향에서 함께 종합병원 여는 게 꿈

의학공부가 어렵지는 않았나?  
마이단 : '인공 피부' 연구팀을 이끌어 주신 최태현 서울대 교수님은 은인 중 한명이다. 항상 연구에 관심 가져 주시고, 또 논문이 경쟁력이라고 늘 강조하신 덕에 7년 사이 13편이 넘는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이만큼 잘 자리잡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김미나 : 보통 지도 교수님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뵙기도 어려운데, 우리는 거의 매일 교수님과 소통했다. 새벽에 나와서 세포 배양도 손수 보여주시고, 하나하나 직접 가르쳐 주셨다. 나는 모발과 네일 분야를 연구 중인데, 얼마 전에는 6개의 새로운 탈모 치료제 성분을 발견했고 특허도 신청 중이다.  
지난달 21일 서울대학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만난 마이단(왼쪽)과 김미나. 부부는 이날 인터뷰에서 언젠가 고향인 중국 신장으로 돌아가 종합병원을 여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지난달 21일 서울대학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만난 마이단(왼쪽)과 김미나. 부부는 이날 인터뷰에서 언젠가 고향인 중국 신장으로 돌아가 종합병원을 여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언젠가는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인가?
마이단 : 고려하고 있다. 그동안은 중국에 돌아가면 대학교수가 되려고 논문을 주로 많이 썼다. 요즘 중국에 좋은 일자리가 있는지 물색 중이다. 돌아가려면 실력도 중요하니 한국에서 경험을 많이 쌓고 있다. 나중에 상하이나 베이징에서 일하다가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내와 함께 종합병원을 여는 게 꿈이다.  
김미나 : 나는 교수가 되기보단 개인병원을 열고 싶다. 중국에 피부암이나 피부 질환 환자는 너무 많은데, 전문적으로 보는 의사가 많이 없다. 피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사실 대학 때 전공은 산부인과였다. 남편이 성형외과를 전공했으니 나도 피부과 공부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전공을 바꿨다.  
김미나는 중국 SNS인 더우인(抖音, 중국판 틱톡)에서 '미나 박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중국 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더우인 캡처]

김미나는 중국 SNS인 더우인(抖音, 중국판 틱톡)에서 '미나 박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중국 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더우인 캡처]

지금 가장 큰 고민이나 도전이 있다면?
마이단 : 나와 아내는 당장 내일이라도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아이들이 한국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게 걱정이다. 아직 중국 문화를 많이 접하지 않아서, 갑자기 돌아가면 충격을 받거나 스트레스가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미나 : 아이들은 가능하면 한국에서 교육을 하고 나중에 다 큰 뒤에 중국으로 데리고 가는 방법도 생각 중이다.  
한·중 관계에 대한 평소 생각이나 바라는 점은?
마이단 : 한국과 중국은 정말 가깝고 많은 부분이 서로 연결된 나라다.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으로만 상대국을 보다 보니 관계가 좀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가 많지만, 요즘은 안 좋은 것들이 더 잘 보이는 세상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중간에서 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얘기,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하고, 한·중이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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