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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울리는 '아기용품' 프리미엄…"기준 없는데 가격은 2~5배?"

중앙일보

입력

올해 출산을 앞둔 예비 엄마 A(32)씨는 육아 용품 준비를 위해 온라인 맘카페 등에 소개된 ‘육아 필수 아이템’ 목록을 확인했다 깜짝 놀랐다. ‘필수’라는 단어가 붙은 목록인데도 항목이 70여개에 달했고, 항목마다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는 이른바 ‘국민템’의 가격을 찾아 더했더니 686만원이란 숫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육아 커뮤니티에서 내려받은 ‘육아 필수템’이나 ‘출산 준비물’ 목록은 더했다. 항목이 150여개에 총 가격은 884만원까지 뛰었다. A씨는 “가격이 너무 비싸 놀랐고, 다들 육아에 이 정도는 쓴다는 뜻인가 싶어서 또 놀랐다. 부담은 되지만, 그래도 태어날 아기에겐 제일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A씨는 급한대로 중고거래 앱에서 싼값에 나온 물건을 검색하고, 며칠씩 ‘핫딜’(특정 시간대에만 싸게 파는 마케팅)이 뜨기만 기다렸다가 필요한 물품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A씨만의 일이 아니다. 맘카페 등에선 ‘중고거래 앱 없이는 아이 못 키운다’는 말이 진리처럼 받아 들여질 정도다. 유모차 등 특정 육아용품이 워낙 고가인 측면도 있지만, 일각에선 ‘아기용’이란 명목으로 프리미엄을 붙여 지나치게 비싼 값에 판매하는 업체들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아용 인증을 받은 진짜 ‘육아 필수템’도 있지만, 아기용 물티슈나 젖병세정제 등 성분·효과 측면에서 차이가 미미한데도 아기용이란 말을 내세워 많게는 5배 이상 비싸게 파는 제품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 베이비페어 전시장에 다양한 종류의 유모차가 전시돼 있다. 뉴스1

지난해 9월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 베이비페어 전시장에 다양한 종류의 유모차가 전시돼 있다. 뉴스1

성분 하나 다른 아기용 물티슈, 가격은 2.7배

실제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아기용과 일반용 물티슈를 비교 분석해보니, 대부분 제품에 소듐벤조에이트, 에틸헥실글리세린, 카프릴릴글라이콜, 다이소듐이디티에이 등의 성분이 공통으로 포함돼 있었다. 그중 한 업체에서 만든 아기용·일반용 물티슈는 향료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성분이 같았지만, 아기용 제품이 일반용보다 2.7배 비쌌다. 이에 대해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애당초 아기에게 좋은 물티슈라는 건 없다”며 “아이를 위한다는 카피로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조사에 따라 성분은 같아도 화학물질 함유량을 조정하는 등 비율에서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이 역시 소비자가 정확히 알기 어려워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의견도 있다. 강상욱 상명대 화학과 교수는 “기업에선 아기용 제품엔 화학물질 함유량이 적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함유량은 공개 의무가 없어 이런 내용을 알 수 없는 소비자는 속아서 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기 식기 세척 등에 사용하는 젖병세정제도 비슷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과일이나 채소를 세척하는 일반 1종 세제와 같은 기준으로 안전성을 검사하는 만큼 1종 세척제로 젖병을 씻어도 문제없다”고 했지만, 시중의 젖병세정제 중 한 제품은 100㎖당 2672원에 팔리는 반면 일반 1종 주방 세제 중 저렴한 건 100㎖당 570원에도 살 수 있다. 100㎖당 570원인 제품 뒷면에는 ‘젖병세척 가능’이란 문구도 적혀있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아기용이라는 별도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모에게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하도록 한다면 사실상 속여서 파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어린이제품법에 따르면 ▶어린이용 물놀이기구 ▶어린이용 놀이기구 ▶자동차용 어린이보호장치 ▶어린이용 비비탄총 등 4개 제품 유형은 안전 인증을, ▶유아용 섬유제품 ▶완구 ▶유모차▶유아용 침대 ▶보행기 ▶유아용 캐리어 등 17개 제품 유형은 안전 확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물티슈·세제(세정제)·로션·샴푸 등은 어린이 또는 영유아용 관련 안전 인증·확인 의무가 없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아기 관련 인증도 없는데 아기용으로 제품을 파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명확한 근거 없이 아기용으로 광고하고 판매하는 데 대해 관련 부처가 사업자에 입장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업체에서 비싸게 판매하는 근거를 설명하지 못하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재해야 한다”(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강경한 주장도 나온다.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일반 1종 주방세제. 제품 뒷면에는 '젖병 세척 가능'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찬규 기자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일반 1종 주방세제. 제품 뒷면에는 '젖병 세척 가능'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찬규 기자

업체 “더 안전한 제품 개발” 시민단체 “소비자 피해”

그러나 관련 업체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아기용 물티슈 제조 업체 관계자는 “아기용과 성인용 제품의 안전관리 기준은 차이가 없지만, 아기용은 더 피부가 민감한 사람을 기준으로 테스트하고 있다”며 “아기용 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연구 비용과 비싼 원재료 값을 생각하면 가격은 적당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아기용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더 안전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만큼의 품질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도 과도한 가격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한편 ‘아기용’에 붙은 고가의 프리미엄이 탓에 ‘중저가 제품은 안전하지 않다’는 소비자 인식이 커지는 ‘악순환’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아기용품이 비싼 건 그린워싱(green washing·실제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며 “어른들도 ‘아기용’이라고 하면 ‘순하고 안전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 그런 기대가 가격에 반영되면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효미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역시 “시중엔 중저가여도 품질이 좋은 제품들이 많지만, 아기용 마케팅 경쟁이 심해진 탓에 아이 건강을 신경 쓸 수 밖에 없는 부모들이 고가의 상품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심화되고 가격도 과도하게 비싸진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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