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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딸 묻고 친명 답하는 '세과시 판'…靑청원 닮은 野 국민응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불어민주당이 당원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국민응답센터가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의 ‘팬덤 청원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대표에게 불리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강성 지지층의 극단적 주장으로 게시판이 뒤덮이면서다.

더불어민주당 청원사이트인 국민응답센터.

더불어민주당 청원사이트인 국민응답센터.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국민응답센터를 통해 접수된 이낙연 전 대표와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출당 요구 청원 2건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조 사무총장은 “우리 당의 단결과 화합을 향한 이재명 대표의 호소를 당원 동지들께서 깊이 혜량하여 달라”며 수용 거부 방침을 밝혔다.

거부된 2건의 청원이 국민응답센터에 올라온 건 지난달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가 임박했을 때였다. 당시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논의와 맞물리면서 청원의 반향은 컸다. 이 전 대표 영구 제명 요구 청원의 동의 인원 수는 사흘 만에 답변 충족 요건인 5만명을 넘어섰다. 그렇게 적극 원했던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 대표 지지자가 모인 커뮤니티에선 “민주당은 당원들에게 가혹하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반면 비명계 의원 사이에선 “이미 문자 폭탄과 ‘수박 색출’ 작업으로 의원실이 쑥대밭이 되고 나서야 대응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당초 문자 폭탄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국민응답센터였지만 이미 그 출범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뜻이다.

국민응답센터는 지난해 7월 당시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원청원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게 시발점이다. 당시 우 위원장은 “문자 폭탄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당과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고 그해 8월 1일 ‘당원청원시스템’이 개통된 뒤 9월 개편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권리당원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서 30일 이내 답변을 내놓는 구조다.

앞서 답변 요건을 충족한 3건도 지난해 8월 전당대회가 한창이던 때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안건이었다.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를 폐지하는 청원 2건과 친명계인 최강욱 의원의 징계를 의결한 당 윤리심판원을 규탄하는 청원이었다. 당내에선 이 대표가 전당대회 당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욕하고 싶은 의원을 비난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한 게 이같은 상황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칭 ‘개딸’과 같은 극성 지지층이 원하는 목소리를 분출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 셈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답변을 기다리는 청원 대부분도 이 대표에겐 유리하고 비명계에겐 날을 세우는 내용이다. 사법 리스크가 있는 이 대표가 자유롭게 대선 출마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당헌 25조 예외규정 신설 청원은 17일 현재 5만2000명의 동의를 받았다. 지난달 27일 체포동의안 표결에 찬성한 의원 명단을 공개해달라는 청원도 4만5000명이 동의했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지도부가 답변할 만한 성격의 선을 넘어 섰다”며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청와대 때 운영됐던 국민청원 게시판을 떠올리기도 한다. 처음 취지는 국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문재인 전 대통령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국민응답센터를 개선하기 위해선 권리당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접근 권한을 주고 답변 기준도 상향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장성호 건국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당원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참여할 수 있게 하고, 답변 동의 수도 20만명으로 올리는 등 과감하게 트는 게 좋겠다”며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 대해선 외부에 있는 일반 국민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이재명 대표로선 현재 운영 방식이 당내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될 수 있겠지만 다양한 의견을 포용해야 할 민주 정당의 입장에선 현재 운영 방침이 옳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응답센터장인 강준현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모니터링을 통해서 개선할 사항은 개선하겠다”며 “예를 들어 정책 제안의 경우 정치적 현안보다 답변 기준을 하향해 대응하는 방식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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