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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제·안보 성과 얻은 한·일 정상회담, 숙제도 산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31호 34면

정상 간 신뢰 다져 미래 협력 토대 구축

반도체 수출 규제 풀어 양국 윈윈 도모

국내 반대 여론 설득, 강경파 관리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1박 2일의 일본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고 어젯밤 귀국했다. 짧은 기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및 만찬 회동 등을 통해 개인적 신뢰를 구축하고 12년간 중단됐던 ‘셔틀 외교’를 복원한 것은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다만 이번 만남은 모든 현안을 일거에 해결한 종착역이 아니라 협력의 새 시대를 선언한 출발점이다. 경제·안보 분야에서 거둔 상당한 성과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많다.

가장 핵심적 쟁점이었던 강제징용 문제는 윤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을 토대로 일단 큰 틀에서 정리된 모양새다. 강제징용 해법을 미래 지향적 협력을 위한 결단이라고 거듭 강조한 윤 대통령은 “(삼자 변제 이후) 구상권을 행사하면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 표현이나 추가 사과가 없었고, 5월 G7 정상회의 초청 결정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안보 분야를 보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완전 정상화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었다. 윤 대통령 방일 첫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는 역설적으로 한·일의 군사 자산을 총동원한 정보 공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반도체 수출 규제 같은 경제 현안 해소다. 양국이 앞으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협의체 성격의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2018년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양국 경제 교류가 급속히 냉각됐다. 2019~2021년 일본의 한국 제조업 직접 투자액이 2762억 엔(약 2조7000억원)으로 직전 3년보다 57.6% 급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등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의 협력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하지만 과거 수십년간 작동했던 ‘정경 분리’ 원칙이 깨지는 바람에 양국이 불필요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 마침 정상회담 전날 경기도 용인 일대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나온 것은 이런 위기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 소재·장비의 원활한 공급이 절실한 상황에서 이 분야의 최강자인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해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외교 갈등 와중에서 심각한 고충을 겪어야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어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반도체 부문 한·일 협력 가능성을 묻자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다”고 답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양국의 내부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귀국 이후 반대 여론을 더 설득해야 하고, 기시다 총리는 4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강경파의 돌출 발언 등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2003년 일본 국회 연설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는 과거대로 직시하며 국민께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라고 역설했다. 양국 정상은 이번 만남을 계기로 서로가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윈윈’ 관계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의 한·일 관계를 계절에 비유하면 ‘맹춘(孟春·초봄)’이라 할 수 있겠다. 봄은 시작됐지만, 냉기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가끔 북서풍이 불면 꽃샘추위로 감기에 걸릴 수도 있는 환절기다. 두 나라 국민과 국익을 위해서도 완연한 봄을 재촉하는 견고한 노력을 양국이 함께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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