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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지구를 가볍게 할 것이란 착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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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호 21면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기욤 피트롱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디지털 기술의 진화는 인간을 물질의 무게로부터 해방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으며, 수천 권 책이나 수만장의 사진도 저장할 수 있다. 도서관의 수많은 책과 논문들을 찾는 대신 챗GPT에 질문을 던지면 엄청난 양의 정보를 눈앞에 가져다준다.

디지털 전환은 이렇게 산뜻하고 가볍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구를 한없이 무겁게 만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디지털이 깃털처럼 가볍다 못해 무게가 없으며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 오히려 디지털로 인한 오염은 방대할 뿐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로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각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도 어렵다. 디지털 산업의 성장은 분명 실제로 존재하지만 육안을 통해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무색무취한 디지털 오염이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보다 위험한 이유다. 그래서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는 제목 그대로 일상의 디지털 행위가 어떻게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다. 사진은 미국의 구글 데이터센터. [AP=연합뉴스]

책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다. 사진은 미국의 구글 데이터센터. [AP=연합뉴스]

다큐멘터리 PD인 저자는 숨겨진 디지털 세계의 밑바닥을 감각적으로 탐사한다. 2년에 걸쳐 네 개 대륙을 누비면서 우리의 이메일, 우리의 ‘좋아요’, 그리고 우리의 휴가 사진들의 여정을 추적했다. 이를 통해 ‘좋아요’를 누르는 일 뒤에 얼마나 현기증 나는 기만이 우리의 감각이 닿지 않는 곳에 감춰져 있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내 보인다.

이 책은 디지털에 대한 신화를 철저히 무너뜨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SNS에서 손쉽게 누르는 ‘좋아요’는 정확히 어떤 경로를 거쳐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걸까. ‘좋아요’는 이동통신 사업자와 인터넷 모뎀을 거쳐 건물의 공유기를 따라가다 인도 표면에서 약 80㎝ 아래 묻혀 있는 구리 관에 닿는다. 그런 다음 고속도로 같은 대규모 이동 경로를 따라 설치된 전선을 타고서 통신 사업자의 여러 기술적 공간 속에 쌓여 있는 다른 ‘좋아요’들과 합류한다. 여기서 모인 ‘좋아요’ 들은 바다를 가로질러 다른 데이터센터로 운반된다. 마침내 인터넷의 가장 깊은 층에 도달한 ‘좋아요’는 동료의 스마트폰을 향해 지금까지 여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동료가 당신과 고작 10m 떨어진 곳에 있더라도 ‘좋아요’는 수천㎞를 여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스마트폰부터 모뎀, 해저케이블, 데이터센터까지 ‘좋아요’가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상현실인 줄로만 알았던 디지털 세계가 사실은 굉장히 육중한 물리적 실체를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류는 이미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데이터에 대한 저자의 비유는 흥미롭다. 물 한 방울이 1바이트(정보를 세는 단위)라면,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1기가바이트)은 대형 빗물 저장 탱크를 꽉 채울 만큼의 물에 해당된다. 또, 지중해와 흑해를 합한 양에 해당하는 47제타바이트의 데이터가 해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다. 이 많은 데이터는 디지털 시대의 공장으로 불리는 데이터센터에 저장되고, 전기와 물을 비롯한 엄청난 양의 자원이 소모된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전기 먹는 하마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의 미래는 날로 커져만 가는 기술의 힘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의 지혜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될 것이다.” 첫머리에 등장한 스티븐 호킹의 말은 이 책의 결론과도 연결돼 있다. 저자는 인류 앞에 두 개의 길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식량과 에너지 자원을 낭비하기 좋아한다면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이러한 경향을 한층 심화시킬 것이다. 반대로, 지속 가능한 지구를 생각하고자 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원자 군단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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