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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촉과 타박상, 5천년 전 냉동된 인간 몸에도 전쟁의 흔적[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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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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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마거릿 맥밀런 지음
천태화 옮김
공존

인류는 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언어 등 일상 속에도 녹아있다. 영국인은 무례하게 자리를 비우는 것을 ‘프렌치 리브’, 술김에 부리는 만용을 ‘더치커리지’로 각각 부른다. 과거 적국으로 전쟁을 치렀던 흔적이다.

근대올림픽은 ‘평화의 제전’을 열자는 이상에 따라 탄생했지만 사실상 전쟁을 대신하는 국가 대항전이다. FIFA월드컵에서 선수는 전사처럼 고도로 훈련됐으며, 응원단은 군대처럼 조직적이다. 야구도 국가대항전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선 살벌해진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트리니티대와 영국 옥스퍼드대학 세인트앤터니스대의 학장을 지낸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전쟁은 악마가 아닌 바로 사람이 일으키고 수행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전쟁을 ‘인류에 반한다’고 하지만, 인간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쟁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역사학자‧인류학자‧사회생물학자 사이에서 여전히 설전이 오가지만, 인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서로 조직적으로 공격하며 전쟁을 벌이는 성향이 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고 평가한다. 예로 5000년간 눈과 얼음 속에 보존되다 1991년 발견된 냉동인간 외치를 컴퓨터단층촬영(CT) 등으로 조사한 결과 어깨에선 화살촉이, 몸에선 타박상과 자상이 발견됐다. 기원전 3300년쯤에 벌어진 분쟁의 흔적이다.

오스트리아 화가 알빈 에거리엔츠의 그림 '무명용사들'(1914) [사진 공존]

오스트리아 화가 알빈 에거리엔츠의 그림 '무명용사들'(1914) [사진 공존]

지은이는 이렇게 선사시대에 시작된 전쟁이 인간이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하면서 더욱 정교해졌으며, 반대로 전쟁은 사회를 더욱 조직화되고 강하게 만드는 상호반응이 벌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전쟁이 줄어들까. 여기에선 전망이 엇갈린다.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나 고고학자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인간이 폭력에서 멀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20세기와 21세기의 인구 대비 전쟁 사망자 수는 과거 전쟁들보다 낮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피렌체대와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수학적 방법으로 연구한 결과 전쟁 빈도는 줄어도 더욱 치명적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80년 가까이 제3차 대전을 피해왔다. 하지만 6‧25전쟁과 베트남전‧중동전 등 국지전은 그치지 않았다. 스웨덴 업살라대 연구에 따르면 1989~2017년 추정 전쟁사망자는 200만 명이 넘고, 1945년 이후 전쟁 난민은 5200만 명 이상 발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평화에 대한 기대를 짓밟은 가장 최근의 사건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인류의 생물학적‧유전적 본능일까. 영장류 연구를 살펴보자.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연구한 탄자니아 침팬지 집단은 수컷이 무리를 이끌었는데, 도발이 없어도 다른 집단과 조직적인 영역싸움을 벌였다. 반면 암컷이 강한 집단을 형성해 수컷을 지배하는 침팬지 사촌 보노보는 낯선 보노보를 만나면 먹을 것을 나눠주고, 털을 골라주며, 스스럼없이 껴안고 서로를 즐겁게 해준다.

지은이는 인류가 둘 다를 닮았다고 주장한다. 두려움을 느끼면 침팬지처럼 폭력적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보노보처럼 우호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신뢰하고 이타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 포격으로 폐허로 변한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군 포격으로 폐허로 변한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루소는 개인과 정치‧사회 조직이 새로운 계약에 의해 계몽 국가를 이룬다면 전쟁 원인인 상호불신‧탐욕‧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홉스는 계몽이나 자발적인 협력 대신 통치와 질서를 보장할 수 있는 강력한 권능의 정치조직(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이 폭력을 통제해야 하다고 봤다. 지은이는 인간이 만든 유토피아의 이상도, 혁명도, 제국도 평화에 대한 기대와 관련이 크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현재는 미국이라는 리바이어던의 패권이 저무는 시대인지 모른다며 전쟁을 막으려면 세계 질서를 유지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동맹일까, 대화일까.

두려운 것은 전쟁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개전의 도화선을 살펴보면 황당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1500만~2000만 명이 숨진 제1차 세계대전은 황제의 동생인 후계자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의 공격으로 사망한 것이 계기였다. 물론 동맹관계, 민족주의, 패권국과 신흥국의 갈등 등 복잡한 국제정세라는 화약고가 이미 있었기에 작은 불꽃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긴 했지만 말이다.

3000년도 더 전에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은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부인을 납치하면서 불붙었다. 전쟁의 기원을 보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목마로 상대를 속였던 고대나 강철‧기계 문명의 산물인 야포‧기관총‧전차와 거대한 방어선을 앞세운 현대나 어리석고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민간인 살상은 오히려 더 흔해졌다.

가공할 신무기와 인공지능을 앞세운 자율살인기계, 사이버 전쟁 등으로 인류가 종말을 맞을 위험은 공기처럼 우리 주변을 감돈다. 전쟁을 제대로 알고 깊이 생각해야 인류의 종말을 막을 수 있다는 지은이의 말이 울림을 주는 이유다. 우리는 전쟁을 얼마나 아는가. 원제 How conflict shaped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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