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자 쉬고 "그래 알겠더냐"를 단숨에 읽는 단시조의 맛[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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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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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떠난 바다에 경례
오승철 지음
황금알

낯선 제주 방언과 지명, 문화적 맥락을 알고 읽어야 감흥이 더한 시조집이다. 가령 단시조 '칠십리'가 그렇다.

 "세상에 등 내밀면 안마라도 해주나/ 해마다 점점 낯선 서귀포 솔동산길/ 찻집에 몰래 온 섬도 뿔소라로 우는 저녁".

 '서귀포 칠십리'는 제주도민들에게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고향의 이상향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솔동산길은 서울로 치면 명동처럼 번화한 곳이라는 것. 그런 곳이 변질되다 보니 뿔소라가 숨죽여 운다. 단수(單首)여서 여운이 남는다.

 '애벌레 풍경소리' 같은 작품 역시 제목을 눈여겨보게 된다. 어린 풍경소리라는 뜻일까. 단시조의 종장 "몸 뱅뱅 감은 낙엽만 대롱이는 풍경소리"가 단서다. 비비 틀린 낙엽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미세한 소리가 떠오른다.

 '고추잠자리. 22'는 '삶의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담고 있다. 줄표(-)와, 시조의 규격화된 형식을 거스르는 파격을 적절히 조합해 감정을 고조시킨다.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날아보니 알겠더냐//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매운 맛을 알겠더냐// 한 생애/ 그리움으로/ 붉어보니 알겠더냐".

 줄표에서 한 박자 쉬고, 이어지는 "그래 알겠더냐"를 단숨에 읽어야 맛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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