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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핵 옵션 썼다" 佛 연금개혁 후폭풍...62% "시위 계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에서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가 연금 개혁안의 의회 무투표 강행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64세를 반대한다'는 종이를 들고 기립해 야유했다. AF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에서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가 연금 개혁안의 의회 무투표 강행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64세를 반대한다'는 종이를 들고 기립해 야유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정부가 16일(현지시간) 근로자의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연금 개혁안을 의회 표결 없이 강행하면서 후폭풍을 예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45) 대통령은 숙원 사업이던 연금 개혁안을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켰다. 동시에 프랑스 내 극우 정치 세력의 부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 연금 개혁안을 총괄하는 엘리자베스 보른(61) 총리는 16일 하원 표결을 불과 몇 분 앞두고 ‘헌법 49.3조’ 발동을 발표했다. 보른 총리는 의회 연설을 통해 “(하원의 부결로)175시간의 의회 토론을 무산시킬 위험을 정부는 감수할 수 없다.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헌법 제49조 3항에 정부가 의회의 동의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일종의 ‘프리패스 조항’을 두고 있다. 대신 의회는 정부 불신임안을 24시간 안에 제기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현지 매체 프랑스24는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핵 옵션(a nuclear option, 극단적 선택을 의미)’을 택했다”고 평했다. 표결 몇 시간 전 마크롱 대통령이 엘리제궁에서 각료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서다. 정부로서는 여당 르네상스가 250석으로 하원의 과반(총 577석 가운데 289표)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도 우파인 공화당(62석)에 연금 개혁안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좌파 연합과 극우 국민연합 등 야당 의원들은 반발했다. 보른 총리가 하원의 연단에 서기도 전 야당 의원들은 기립해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합창했다. 손에는 ‘64세를 거부한다’는 종이 피켓이 들려 있었다. 현지 언론들은 “의원들이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대오를 갖춰라’는 대목을 부를 때는 마치 프랑스 혁명 때로 돌아간 사극 드라마 같았다”고 묘사했다.

연금 개혁안의 강행 여파는 거리로 이어졌다. 16일 저녁까지 의회 맞은편 콩코드 광장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남부 마르세유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파리에선 일부 시위대가 돌을 던지는 등 폭력 시위로 번져 경찰이 최루탄을 동원해 해산했다. 파리 경찰은 이날 오후 10시까지 12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국내 여론은 연금 개혁안 반대 쪽이 우세하다. 앞서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의 15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2%는 “연금 개혁안이 채택되더라도 파업·시위가 계속 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74%는 “정부의 49.3조 발동을 반대한다”고 답했다. 프랑스 노조는 오는 23일 파업과 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프랑스의 극우 성향 정치인 마린 르펜(왼쪽 두번째) 국민연합 대표가 14일(현지시간) 의회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미소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프랑스의 극우 성향 정치인 마린 르펜(왼쪽 두번째) 국민연합 대표가 14일(현지시간) 의회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미소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은 극우 정치의 부상이라는 비싼 대가를 불러올 수 있는 승리”라고 평가했다. 차기 대선에서 마크롱의 계승자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극우 성향 국민 연합의 마린 르펜(54)은 연금 개혁안의 반정부 노선을 이끌며 정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정부의 49.3조 발동은 헌법상의 절차인데도 르펜은 “민주주의 쿠데타” 등 자극적인 어조로 정부를 몰아치고 있다.

파리 시앙스포대 유럽·비교정치학 센터의 브루노 팔리에르 박사는 “프랑스 연금 논쟁은 트럼프 미 정부의 등장과 유사하게 급진 우파 정당에 대한 표를 모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면서 “연금 개혁의 부정적 측면을 감내해야 하는 중하위 계급의 분노는 그들이 투표 용지를 받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2010년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올린 뒤 2012년 재선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르펜이 주도하는 보른 총리에 대한 의회 불신임안은 18일 발의되고 내주 초 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다. 여·야 모두 의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 했기 때문에 불신임 투표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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