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정 논설위원
도쿄에 벚꽃이 핀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상으로는 12년 만에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 관계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일에 대해 외교·안보 전략가인 위성락(69)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장기간 경색됐던 한·일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큰 걸음을 잘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본 한·일 정상회담] #12년만에 '셔틀 외교' 복원은 성과 #한·일 관계 진전의 좋은 계기 마련 #과거담화 계승확인, 추가언급 없어 #회담 한번으로 완전 해결엔 한계 #4월 일본 지방 선거 등 변수 고려 #반대 진영과 계속 소통·설득하길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3/17/f7d19317-41d3-4d18-8b55-01498e6a3caf.jpg)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기시다 총리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빈번하게 서로 방문하는 '셔틀 외교' 재개를 제안하자 윤 대통령이 환영한다고 화답해 셔틀 외교를 복원한 것을 성과로 꼽았다. 위 전 본부장은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신뢰를 확인했다고 두 번이나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며 "어렵게 마련한 대화의 모멘텀을 앞으로 계속 살려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무고시 13회 출신으로 외교부에서 대표적 북미·북핵 통으로 손꼽혔던 위 전 본부장은 강제징용 등 한·일 현안에 대해 그동안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수차례 전향적 해법을 제시해왔다. 그는 한·일 관계 회복과 한·미·일 협력 강화를 촉구해왔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했으나 16일 한·일 정상회담 뒤 전화로 내용을 보충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은 징용 해법에 대한 국내의 반대 여론을 잘 설득하고, 일본과는 추가 협의를 통해 더 적극적인 호응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현동 기자
-이번 정상회담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정상회담으로 한·일 관계의 최대 장애물이었던 강제징용 문제가 일단 해결되고 관계가 복원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2011년 이후 중단됐던 양국 정상의 셔틀 외교도 이번에 복원됐고, 시기는 못 박지 않았지만 기시다 총리의 한국 답방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해제 등 양국 관계 진전의 좋은 계기를 만들었다고 본다. 환영할 일이다."
-가장 의미 있었거나 제일 주목한 장면이나 메시지는.
"기시다 총리가 두 번이나 개인적 신뢰 관계를 언급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고 중요한 메시지였다. 앞으로 현안을 푸는 데 좋은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식 만찬 이후에 오므라이스 전문 노포에서 2차 만찬 자리를 별도로 만들어 양국 정상끼리 아주 친밀하게 대화한 장면이 의미 있었고 특별히 눈에 띄었다."
-부족했거나 아쉬웠던 부분은.
"과거사 사과 수위에 대해 기시다 총리가 '1998년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일본 역대 내각의 과거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직접적 추가 언급이나 의미 있는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당초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수준이었다. 또 공동성명 없이 공동기자회견만 있었다고 해서 정상회담의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상회담 이후의 한·일 관계를 전망한다면.
"첫 단추를 잘 끼웠으니 앞으로 양국이 더 긴밀하게 대화·협의하고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길 기대한다. 다만 징용에 대한 국내의 반대 여론을 푸는 것은 윤 대통령에게 앞으로 남은 과제다."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와 함께 도쿄 긴자의 한 음식점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오므라이스 전문 노포에서 2차 만찬을 이어갔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3/17/c6da25cd-5ef5-4e5d-ada9-5d7b40cc9dbb.jpg)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와 함께 도쿄 긴자의 한 음식점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오므라이스 전문 노포에서 2차 만찬을 이어갔다. [연합뉴스]
-정상회담 당일 아침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한·일 안보 협력의 당위성이 부각됐다.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이 입을 모아 북한의 도발을 비판하고 공동 대응과 안보 협력 강화에 의견 일치를 보였다. 그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수위가 계속 높아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정상화는 당연한 수순이라 본다."
-윤 대통령이 귀국 후에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대목은.
"이번 방문 이후에 정부가 방일 성과 홍보에 너무 성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고려할 때 오히려 진지하고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 게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여론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어느 정도 풀렸다고 보나.
“일단 해결 과정으로 진입했다. 해결 과정을 터널에 비유하면 입구 부분이 아니라 절반 이상 많이 들어갔다고 본다. 일본이 볼 때는 한국 대법원 판결로 생긴 징용 문제는 이제 해소된 셈이 됐다. 강제징용 갈등은 한국 정부가 감당하고 해결할 문제가 됐다. 징용 대신 반일 감정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은 내년 4월까지 큰 선거가 없지만, 일본은 오는 4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기시다 총리는 운신의 폭이 좁아 보인다. 향후 완급이나 속도 조절이 필요할까.
"정상회담 한 번으로 현안이 완전하게 해결될 수는 없다. 일본의 4월 선거 전에는 일본의 통 큰 양보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선거가 코 앞이라 일본 집권 자민당에서 '구체적으로 사과하지 말라'는 주문이 강하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4월 지방 선거 이후까지 시야에 두고 선거 이후에 무엇을 좀 더 확보할 수 있을지 따져 봐야 한다. 완급과 속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10월 4일 일본 언론의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보도 장면. 북한은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16일 아침 동해상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한일 정상은 이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EPA=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3/17/61fb25e3-7133-41a7-bc77-bd7ae3c577e5.jpg)
지난해 10월 4일 일본 언론의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보도 장면. 북한은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16일 아침 동해상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한일 정상은 이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EPA=연합뉴스]
-안보 협력에 추가할 것은.
"점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중국의 부상,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중·러의 밀착 접근 등 근래 주변 안보 상황 변화에 비춰 볼 때 지소미아 정상화는 물론이고,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 증대는 당연한 지향점이다. 쿼드(QUAD)와도 어떠한 형태로든 더 협력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엔 찬성하면서도 이번 강제징용 해법에는 반대가 많다.
"그래서 진보·보수를 망라한 '초당적 현인 회의'를 만들어 해법을 도출하고 의견을 수렴하자고 수차례 제안했지만, 역대 정권이 듣지 않았다. 윤 정부 혼자서 해법을 만들고 밀고 가는 바람에 지금 60% 가까운 반대가 나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상 외교와 한·일 관계 개선, 한·미·일 공조 강화 정책이 충분한 힘을 받기 어려워 보여 안타깝다."
-징용 문제는 문재인 정부도 풀지 못한 딜레마다.
"2012년과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우리 정부가 국내법(대법원 판결)과 국제법(한일 청구권 합의) 사이에 끼는 딜레마에 빠졌다. 국제 조약과 국내 판결 사이에서 문 정부는 국내법 편에 섰기에 일본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문희상안은 국내 판결과 거리가 있었다. 윤 정부안은 문희상안과 유사하지만 법제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윤 정부가 할 수 없이 국내법 입장에 서지 않고 국제법에 가깝게 섰다고 본다. 윤 정부가 현실적인 방안을 택한 것은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국내 판결과 다른 안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고, 반대 진영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반대 진영과 협의하는 정치적 프로세스가 필수적이었다. 이것이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너무 서둘렀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내에 더 많이 설명하고 일본과 협의를 좀 달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일본이 4월 선거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 4월 이후까지 협상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왜 우리 기업들의 돈으로 배상하는 것이 불가피한지를 최고위급이 나서서 정교한 논리로 국민을 설득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정부 혼자 하면 해결이 안 된다. 이번에 제시한 해법을 놓고 국내 정치적 프로세스를 밟아야 했는데 그게 제로였다. 한·일 과거사처럼 아주 정치적인 문제를 극히 비정치적으로 다뤘다. 그 자리에 그냥 행정적 절차만 있었다."
![1998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해 도쿄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3/17/dba32e13-9ead-4933-a551-b01eebeeb2ac.jpg)
1998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해 도쿄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뒤늦게라도 여론을 수렴해 입법화 수순을 밟아야 할까.
"문희상안처럼 입법화를 하면 일부 피해자의 법적 이의 제기를 막을 수 있다. 입법화를 하려 했다면 윤 정부 집권 초기에 추진했어야 했다."
-강제징용 해법이 '제2의 위안부 합의'가 될 우려는 없나.
"진보 진영과 소통이 부족한 상태에서 해법이 나왔다. 반대 여론이 높은 지금 묘안은 없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국내에서 반대 진영과 소통을 더 많이 해 국내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일본과 지속해서 협의해 호응을 끌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4월 하순 미국 국빈방문, 5월 초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외교 무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강제징용 해법에 부정적인 여론 중 상당수는 한국이 미·일 주도의 구도에 과도하게 경도하는 것을 경계한다. 한국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에 너무 양보한 채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섰다는 의심이다. 정부는 이런 여론 흐름을 예민하게 보면서 신중하고 세련된 대응을 해야 한다. 드라이브를 너무 세게 걸면 정치적 역풍이 있을 수 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 대해 "첫 단추를 잘 꿰었다"고 평가하며 "일본의 지방 선거 등을 고려해 윤 대통령의 완급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정치권과 국민께 할 말이 있다면.
"이번 징용 해법이 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론 분열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반일 국민 정서가 고조되는 건 국익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와 관료,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눈을 좀 돌리길 바란다. 강제징용 문제 대응 과정에서 정부도 정치권도 사법부도 약점을 노출했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고쳐야 일본 앞에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다. 좀 더 지혜롭게 좀 더 유능한 외교를 할 새로운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김아영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작업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