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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주 52시간제 둘러싼 정책 혼선 걱정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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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부처 발표 뒤 윤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 무리”

발표 전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 충분히 수렴해야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개선을 둘러싼 정책 혼선이 점입가경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주 52시간제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개별 기업의 사정에 따라 노사 합의를 거쳐 연장근로 단위를 ‘주’뿐 아니라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개선책을 발표하고 입법예고했다. ‘주 52시간’을 ‘주 평균 52시간’으로 바꿔 근로자의 선택권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일이 많을 때는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쉴 수 있도록 바꿨다고 정부는 강조했다. 하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정부의 개선책이 마치 ‘주 69시간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근로자 연차 소진율은 76.1%에 불과하다. 있는 연차도 제대로 못 쓰는데 정부 설명처럼 ‘제주 한 달 살이’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현장 근로자의 반발이 쏟아졌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보완을 지시했고, 어제는 “연장 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밝혔다. 정부가 공식 발표하고 입법예고까지 한 정책이 이렇게 혼선이 빚어져도 되는가. 대통령실과 부처의 정책 조율 과정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6월에도 노동부 장관이 공식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 방향을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부인해 혼선이 빚어졌고,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지난 70년간 유지된 ‘1주 단위’의 근로시간 규제는 획일적·경직적인 낡은 제도란 비판을 받았다. 주 평균이나 총량 준수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서 건강권을 보호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맞지 않았다. 현장의 합리적인 보완 요구는 받아들이되, 주 52시간제 개선책의 기본 틀까지 흔들어서는 안 되겠다. 주 최대 근로시간 상한을 너무 낮추면 제도 개선의 취지 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

MZ노조가 반대 의견을 내고 대통령이 보완을 지시하자 노동부가 뒤늦게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미리 현장의 얘기를 들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제주 한 달 살이’ 같은 정책 홍보의 실패를 막을 수 있었다. 노동계 의견도 적극 수렴했으면 한다. 물론 양대 노총이 사회적 합의기구인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어 대화하기 힘든 환경이긴 하다. 그래도 입법예고 전에 노동계와 야당에 설명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정부의 개선책은 근로기준법 등을 국회에서 개정해야 추진할 수 있다.

근로시간 합리화는 노동개혁의 일부분일 뿐이다.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취약층인 비노조·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가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게 노동개혁이다. 52시간제 개선이라는 노동개혁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