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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 수출한 규슈올레, 일본의 속살을 걷는 재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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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규슈올레는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올레다. 제주올레의 길 표식을 그대로 사용한다. 사진은 규슈올레 미나미시마바라 코스.

규슈올레는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올레다. 제주올레의 길 표식을 그대로 사용한다. 사진은 규슈올레 미나미시마바라 코스.

3월 5일 일본 규슈 사가현 다케오시 다케오온천역 광장. 한·일 올레꾼 8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규슈올레 개장 10주년을 기념하는 제1회 규슈올레 걷기 축제가 열렸다. 원래는 지난해가 규슈올레 개장 10주년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행사가 열리지 못했었다.

지난 4일 개장한 규슈올레 18번째 코스인 마츠우라·후쿠시마 코스. 다랭이 논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4일 개장한 규슈올레 18번째 코스인 마츠우라·후쿠시마 코스. 다랭이 논이 인상적이었다.

걷기 축제 전날인 4일에는 나가사키현 마츠우라시에서 규슈올레 18번째 코스인 마츠우라·후쿠시마 코스 개막 행사가 열렸다. 코로나 사태로 2년간 중단됐던 신규 코스 개장 행사가 재개한 것이다. week&은 2012년 제1호 규슈올레인 다케오 코스부터 신규 코스 개장 행사를 취재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직후 개장한 두 개 코스만 제외하고 모든 개막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 11년간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어도 올레길에서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일본에 진출한 올레길, 규슈올레의 11년을 돌아본다.

일본, 코로나 때에도 저작권료 계속 지급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발했다. 일본 열도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관광 부문이 타격도 컸다. 일본 남쪽 규슈 지방도 마찬가지였다. 원전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현과 규슈의 대표 도시 후쿠오카는 1000㎞ 거리다. 서울과 후쿠시마도 1000㎞쯤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규슈는 대지진의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규슈 관광시장의 65%를 차지하는 한국인 방일 시장이 무너졌다.

규슈관광추진기구(현재는 규슈관광기구)가 한국인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 찾아낸 대책이 올레길 수입이었다. 그 시절 한국은 걷기여행 열풍으로 뜨거웠다. 2007년 제주올레 1코스가 개장한 뒤 전국 방방곡곡에 수많은 트레일(걷기여행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규슈에 제주올레를 닮은 트레일을 만들면, 발길 끊었던 한국인이 돌아와 걸을 것이라고 규슈관광기구는 기대했다. 그 기대는 맞아떨어졌다.

지난 5일 다케오 코스에서 제1회 규슈올레 걷기 축제가 열렸다.

지난 5일 다케오 코스에서 제1회 규슈올레 걷기 축제가 열렸다.

2012년 2월 29일 첫 규슈올레 코스인 다케오 코스가 개장했다. 다케오 코스 개장식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1965년 현대건설이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해 한국 최초로 해외 건설사업에 진출했는데 반세기 가까이 지난 오늘 ‘안티 공구리(콘크리트) 정신’을 추구하는 제주올레가 일본에 수출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야메 코스 녹차 밭 어귀에 있는 간세다리(올레 이정표).

야메 코스 녹차 밭 어귀에 있는 간세다리(올레 이정표).

규슈올레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일본 입장에서 규슈올레는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마케팅 수단이지만, 우리에게 규슈올레는 일본에 수출한 K콘텐트다. 제주올레는 올레길이라는 이름부터 간세다리(제주올레 이정표)·화살표·리본 등 올레길 상징을 사용하는 명목으로 규슈관광기구로부터 연 100만엔(약 1000만원)을 받는다. 코로나 사태로 신규 코스 개장이 중단됐던 2021년과 2022년에도 100만엔씩 받았다. 1960년대에는 한국 기업이 태국에 고속도로를 건설했지만, 50년쯤 뒤에는 한국 시민단체가 일본에 트레일을 냈다.

2012년 2월 규슈올레 제1호 코스인 다케오 코스가 개장했다. 다케오온천역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2012년 2월 규슈올레 제1호 코스인 다케오 코스가 개장했다. 다케오온천역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규슈관광기구에 따르면 2012~2021년 규슈올레 방문자 수는 53만5000명이다.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만든 콘텐트이지만, 일본인 방문자가 더 많았다. 규슈올레의 성공에 힘입어 일본에 제2의 올레길도 열렸다. 2018년부터 꾸준히 개장하고 있는 미야기올레다. 미야기올레는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에 난 올레길로, 현재 4개 코스가 운영 중이다.

이유미 제주올레 일본지사장은 “제주올레의 가치와 철학이 일본에서 10년 넘게 지속할 수 있도록 함께 걸어주신 한국과 일본 올레꾼에게 감사하다”며 “11월엔 미야기올레도 새 코스를 개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쿠분고 코스 종점 아사지역에서 판매하는 규슈올레 간세 인형. 제주올레와 디자인이 같다.

오쿠분고 코스 종점 아사지역에서 판매하는 규슈올레 간세 인형. 제주올레와 디자인이 같다.

2012년 첫 코스를 개장한 직후 3, 4년은 규슈의 7개 현(縣, 한국의 도에 해당)이 경쟁하듯이 규슈올레 개장에 열을 올렸다. 7개 현이 코스를 하나씩 추천하면 규슈관광기구와 제주올레가 현장 심사를 나가 신규 코스를 선정했다. 심사에서 떨어진 지역의 공무원 중에 눈물을 보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제주도로 날아와 원조 올레길을 공부하고 돌아간 지역 공무원도 많았다.

코스마다 온천·신사 지역명소 거쳐

가라쓰 코스 종점에 서 있는 간세다리와 돌하루방.

가라쓰 코스 종점에 서 있는 간세다리와 돌하루방.

제주올레와 규슈올레는 자매 길이다. 그러나 성격은 판이하다. 제주올레는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조성한 제주도 둘레길이다. 시작점부터 종점까지 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러나 규슈올레는 각 지역의 대표 관광지를 이은 10㎞ 내외의 단거리 트레일이다. 하여 연결되는 코스가 하나도 없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규슈올레는 코스마다 온천·신사 같은 지역 명소를 하나 이상 꼭 거친다. 코스 시작점이나 종점이 기차역인 경우도 많다. 길이도 제주올레보다 훨씬 짧다. 반나절이면 한 코스를 다 걸을 수 있다.

규슈올레는 모두 25개 코스가 개장했지만, 현재는 18개 코스만 운영 중이다. 7개 코스가 저마다 이유로 운영을 중단했다. 코로나 사태를 겪은 지난 3년간 문을 닫은 코스가 많았다. 18개 코스 중에서 후쿠오카현에 조성된 코스는 모두 7개다. 후쿠오카현과 접한 사가현과 오이타현에 각 3개, 2개 코스가 있다. 18개 코스 중에서 12개 코스가 규슈 관광의 관문으로 통하는 후쿠오카시와 가깝다.

이달 4일 개장한 마츠우라·후쿠시마 코스도 나가사키현 소속이지만, 후쿠오카시에서 자동차로 2시간이 채 안 걸린다. 마츠우라·후쿠시마 코스는 다랭이 논이 인상적이었다. 산비탈을 깎아 한줌의 논을 일군 풍경은 우리네 다랭이 논처럼 안쓰러웠다.

사이키·오뉴지마 코스의 해안 언덕.

사이키·오뉴지마 코스의 해안 언덕.

규슈올레 3대 인기 코스는 다케오, 가라쓰, 우레시노 코스다. 모두 사가현에 있다. 다케오 코스는 교통이 편리하고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가라쓰 코스는 맛 여행과 역사 기행 코스로 제격이고, 우레시노 코스는 녹차 밭과 사케가 유명하다. 다케오와 우레시노는 유서 깊은 온천 마을이기도 하다. 섬 지역에 조성된 규슈올레는 여러 개가 있지만, 배를 타고 들어가는 코스는 무나카타·오시마 코스와 사이키·오뉴지마 코스의 두 개뿐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현재 한국의 여러 여행사가 규슈올레 상품을 판다.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아도 규슈올레를 걷는 데 문제는 없다. 제주올레와 똑같이 생긴 표식만 따라 걸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정표만 보면 규슈올레가 제주올레보다 훨씬 더 친절하다.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는 “일본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자연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며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던 규슈올레가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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