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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랑해' 썼다간 끌려간다…'기래서 알간' 연습하는 北주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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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는 8일 평양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채로워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여러 디자인의 달린옷(원피스의 북한식 표현)을 입은 북한 여성들의 모습. 조선중앙TV 화면

북한 조선중앙TV는 8일 평양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채로워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여러 디자인의 달린옷(원피스의 북한식 표현)을 입은 북한 여성들의 모습. 조선중앙TV 화면

북한 주민들이 남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대사를 따라 하는 등 ‘남한 말투’가 급속히 퍼지자 북한 당국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한국식으로 고정된 언어 습관을 고치기 위해 ‘평양말’을 배우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5일 보도했다.

RFA에 따르면 평안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요즘 당국이 ‘평양문화어보호법’에 따라 평양말을 살려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이미 한국식 말투에 익숙해진 주민들은 평양말을 따로 연습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오랜 세월 꽉 막힌 체제에서 ‘장군님 만세’만 외치던 주민들은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자유롭고 매력적인 한국식 생활문화와 말투에 매력을 느껴 이를 따라 하게 된 것”이라면서 “한국식 말투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한국말이 얼결에 튀어나와 처벌받을까 염려돼 조선(북한)식 말투를 연습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북한 당국은 지난 1월 17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에서 ‘평양문화어보호’을 채택하고 남한말을 비롯한 외국식 말투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법에는 남한말을 쓰면 6년 이상의 징역형, 남한말투를 가르치면 최고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한다.

소식통은 그러나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가장 많이 보는 대상은 불법 영상물을 단속하는 사법일꾼들과 간부들, 그 가족, 친척들”이라면서 “체제를 보위하고 지켜야 할 사법일꾼들이 오히려 한국영화와 드라마에 빠져 한국식 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사람들이 ‘오빠’, ‘자기야’, ‘사랑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한국영화를 귀에 익고 입에 오를 정도로 봤다는 증거”라면서 “당에서 평양말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자 최근 주민들이 기래서(그래서)나 알간(알겠니) 등 평양말을 연습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북한에서도 오빠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연인사이에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 인민 생활상 편의 보장을 위해 주민지구 순회길에 나선 평양 중구역 외성동 일꾼들을 소개했다.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 인민 생활상 편의 보장을 위해 주민지구 순회길에 나선 평양 중구역 외성동 일꾼들을 소개했다. 연합뉴스

평안북도의 한 주민소식통도 “요즘 일반 주민들도 평양 표준어 연습을 하고 있다”면서 “일부 주민들은 입에 붙어 습관이 된 한국말을 바꾸려고 연습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당에서는 한국말을 없애려고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하고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한 근본 요구라고 밝혔다”면서 “단속에 걸려 처벌받을 게 두려워 평양말을 연습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한국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당국에 불만이 많다”고 덧붙였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은 2021년 청년층을 대상으로 ‘남친’(남자친구), ‘쪽팔린다’(창피하다)를 비롯해 남편을 ‘오빠야’, 남자친구를 ‘자기야’로 부르는 행위 등 남한식 말투와 호칭을 강력 단속했다.

북한이 이런 법령을 채택한 것은 단순히 언어적인 측면을 넘어 외부 사조에 대한 당국의 경계심이 반영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실장은 “이번 법 채택이 북한 주민들의 언어 사용 변화에 심각성을 느끼는 인식이 지도부 내부적으로 축적된 결과”라며 “주민들에게 일종의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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