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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의 계절, '기업의 이익' 지키는 사외이사는 상상 속 존재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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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주주총회의 계절이다. 15일 삼성전자 주총이 열렸고, 17일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포스코홀딩스, 23일엔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의 주총이 예정돼 있다. 경영을 책임질 새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도 주총에서 선임된다.

사외이사 제도가 국내에 본격 도입된 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직후부터다. 경영 투명성이 떨어져 당시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반성이 배경이다. 올해는 유독 사외이사 선임을 둘러싼 진통이 길어지고 있다. ‘주인 없는 기업’인 KT와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KT는 당초 윤석열 캠프 경제특보인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사외이사 후보로 내정했지만, 임 고문은 이틀만인 10일 이를 고사했다. 최근 여당과 갈등 중인 KT 상황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업계는 본다.

이달말 예정된 KT 정기 주주 총회에서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의 차기 대표이사 확정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이달 초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이달말 예정된 KT 정기 주주 총회에서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의 차기 대표이사 확정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이달 초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포스코홀딩스는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참여연대에서 활동했던 김준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명된 상태다. 하지만, 현 사외이사로 오는 17일 임기 만료를 앞둔 장승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두터운 친분을 가진 사이란 점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국제중재실무회(KOCIA)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관련 학술회나 저술 활동도 함께 했다. 장 교수는 본인이 직접 사외이사 추천위원 3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전임자가 후임자를 고르는 위원회에서 활동한 것이다. 현행 상법은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가 총위원의 과반수가 되도록 구성’하도록 규정하지만, 포스코홀딩스는 유독 사외이사로만 추천위가 구성돼 있다. 관련 회의록은 비공개 상태다.

장 교수는 현대자동차의 사외이사 후보로 내정된 상황이다. 최근까지 그는 ㈜LG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현재대로라면 포스코그룹→LG그룹→현대차그룹 세 곳과 인연을 맺게 된다.

금융권도 사정이 비슷하다. 신한금융그룹은 임기가 만료된 8명의 사외이사 모두를 연임 대상으로 올렸다. KB·하나·우리금융도 각 2~3명씩 신규 사외이사 선임을 예고 중이지만, 후보 대부분이 교수 출신이다. 감독기관과 언론의 경고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KT&G에선 사외이사 증원 여부를 놓고 사측과 소액주주가 맞서고 있다. 양쪽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사회 구성을 끌고 가려 안간힘이다.

사외이사가 주요 경영 현안 앞에서 ‘거수기’에 그친다는 실효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인재풀이 좁다 보니 ‘한 번 사외이사는 영원한 사외이사’처럼 이곳저곳을 돌며 자리를 차지하는 일도 흔하다. 로저 마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나쁜 이사회를 구분할 수 있는 6가지 방법’이란 글에서 ▶이사회 구성원이 된 것을 지나치게 자랑스러워하거나 ▶이사회가 사교 모임으로 흐르는 것 등이야말로 나쁜 이사회의 주요 특징이라고 했다.

기업의 탐욕을 막아야 할 사외이사 제도가 사외이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리로 변질되지는 말아야 한다.

[장승화 교수 반론문]

이 기사에 대해 장승화 교수는
“① 포스코의 사외이사추천위원회는 선임 과정에 최고경영진의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사외이사로만 구성돼 있다. 이는 국내외 ESG 평가기관의 권장 사항이다.
② OECD 국가 중 퇴임을 앞둔 이사를 사외이사추천위에서 배제하는 곳은 없다. 장승화 교수가 추천위원이 된 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장 교수는 3배수 후보를 추천한 추천자문단을 접촉하거나 그 추천후보 선정 과정에 영향을 미친 바가 전혀 없다.

③ 김준기 교수와는 같은 전공 교수일 뿐 특별히 ‘두터운 친분을 가진 사이’가 아니다. 같이 회장을 지냈다는 국제중재실무회는 2000년대 중반 장 교수가 초대회장 임기를 마친 뒤 거의 나가지 않았다.

④ 장 교수가 포스코, LG, 현대차에서 사외이사로 임명된 것은 국제통상 전문가를 필요로 해서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수기 경제산업부문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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