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도 친명도 "우린 소수파"...'더불어'도 '민주'도 없는 제1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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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좋은미래-당대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15   srba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좋은미래-당대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15 srba

“당 지도부와 의원님들 사이에 실선은 아니지만, 점선 같은 게 그어져 있는 느낌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민주당 최대 의원 모임인 ‘더 좋은 미래’(더미래) 소속 의원 28명과 만난 자리에서 꺼낸 얘기다. ‘민주당의 진로’를 주제로 마련된 이날 간담회는 두 시간 넘게 비공개로 열렸다. 더미래 대표인 강훈식 의원은 간담회 종료 후 “전면적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이 대표는 ‘잘 듣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가 지난달 27일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대거 이탈표가 나온 이후 민주당 의원 여럿과 공개적으로 만나 수습책을 논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표 사퇴 요구까지 나오면서 친명-비명계간 갈등이 2주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민주당은 그간 의원총회조차 열지 못했다. “당장 회의를 열면 감정 표출이 과열돼 싸움만 벌어질 것”(원내 핵심관계자)이란 우려 때문이다.

대신 의원들은 ‘민주당의 길’이나 ‘민주주의 4.0’,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더미래 같이 그룹별로 모여 수습책을 논의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의원총회 발언은 실시간으로 강성 지지층에 유출돼 ‘좌표’가 찍히니, 안전한 사람끼리 모여 논의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16일 오후 체포안 박빙 부결 이후 첫 의원총회를 열지만, 회의 안건으로는 ‘선거제도 개편방안’만 공지된 상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날 의원총회 직후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압도적 부결을 장담했으나, 사흘 뒤 체포안 표결에서는 30표가 넘는 이탈표가 확인됐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날 의원총회 직후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압도적 부결을 장담했으나, 사흘 뒤 체포안 표결에서는 30표가 넘는 이탈표가 확인됐다. 뉴스1

불신(不信)의 골이 깊게 드리운 가운데 친명계와 비명계는 서로 자신을 ‘소수파’로 지칭하며, 해법 마련의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고 있다.

우선 친명계는 “비명계가 겉으로는 압도적 부결에 동의하는 듯 행동한 뒤 몰래 체포안 찬성표를 조직했으니, 이 대표 중심으로 단결해 당을 수습하는 데 앞장서라”(수도권 의원)는 입장이다. 지도부가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우리가 국민의힘 ‘친윤’처럼 힘을 과시한 적도 없고, 숫자로도 소수인데 모든 책임을 다 넘기느냐”(지도부 의원)는 반론이 나온다. 이 대표 측의 한 의원은 “변방 출신 이재명은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와 달리 공천해 준 사람도, 정계 입문 시킨 사람도 없어서 계보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비명계는 “당권을 쥐고 물리적인 힘을 가진 지도부가 해법을 마련하는 게 순리”라는 입장이다. 한 비명계 의원은 “최고위원부터 사무총장·전략기획위원장 등 핵심 당직자, 그리고 ‘처럼회’까지 계산해 보면 적게 잡아도 20명이 이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이야말로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몰래 강성 팬덤을 부추기고 비명계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이 대표 체제에선 의원총회가 매우 경직돼 버렸다. ‘더불어’도 ‘민주’도 없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당내 내홍이 길어지자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 내부에 주인의식을 가진 리더 그룹이 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대선 이후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전 총리 등 1950년대생 중량급 인사들이 한꺼번에 뒤로 물러나면서 주류와 비주류를 중재할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당직자 교체 같은 가시적인 변화가 지체되는 이유로는 ‘친명계’의 느슨한 조직력도 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대선 캠프 출신 민주당 관계자는 “친명계 대부분은 특별한 연이 없는 상태에서 이 대표의 대선을 도운 사람들”이라며 “이 대표 입장에선 자신이 빚을 진 만큼 먼저 ‘물러나라’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민주당 내홍은 결국 이 대표 본인의 사법리스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결국 민주당에서 중요한 게 총선 승리라면, 이 대표 본인이 스스로 해법을 내놓든 결단을 하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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