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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결정" SVB 뱅크런 부추기고…미리 30억 챙겨간 CEO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최고경영자(CEO) 그레고리 베커(55)가 경영 실패와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였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최고경영자(CEO) 그레고리 베커(55)가 경영 실패와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였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를 두고 그레고리 베커(55)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하고 있다. 미국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과 정보기술(IT) 업계의 불황 등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이다.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커의 리스크 관리 오판이 사태를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외신들은 베커가 금리 영향을 크게 받는 상품에 대해 위험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연준이 금리를 4%p 올렸지만, SVB는 전체 매도가능증권(AFS)의 약 2%에 대해서만 금리 인상 헤지에 나섰다. 지난해 말엔 “대규모 채권 포트폴리오에 금리 헤지 내용은 사실상 없다”는 재무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WSJ은 “지난해 연준이 수십 년 만에 초고속 금리 인상을 단행했음에도 베커는 금리 하락에 내기(베팅) 걸었다”며 “위험 관리를 외면하고 낙관적으로 전망하면서 파산을 앞당긴 셈”이라고 전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베커가 은행의 손실 규모 등 재정상황을 공개한 다음날 SVB 주식은 60% 가까이 폭락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베커가 은행의 손실 규모 등 재정상황을 공개한 다음날 SVB 주식은 60% 가까이 폭락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회사의 손실 규모 등 재정 상황을 공개한 것도 주요 실책으로 꼽았다. 베커의 성급한 결정이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지난 8일 베커는 “SVB가 180억 달러(약 2조원) 상당의 손실을 봤고 22억 5000만 달러(약 3조원) 상당의 신주를 발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거의 모든 대출을 은행으로부터 받은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은 공포에 질렸고, SVB 주식은 60% 가까이 폭락했다. 예금도 발표 36시간 만에 420억 달러(약 55조원) 상당이 인출됐다. CNN은 SVB 직원들을 인용해 “은행의 재정 상황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에 모두 당황했다”며 “완전히 바보 같은 결정”이라고 전했다.

베커는 파산 직전 자신의 지분을 매각해 도덕적 해이 논란에도 휩싸였다. 그는 파산 11일 전인 지난달 27일 모회사 SVB파이낸셜 주식 1만2451주(약 48억원)를 매각했다. 그가 챙긴 순이익은 230만 달러(약 30억원)로 추정된다. ‘기업 내부자는 최소 30일 전 지분 매각 계획을 보고해야 한다’는 SEC(미 증권 거래 위원회) 법규에 어긋나지 않았지만, 도덕적 책임을 외면한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특히 그는 파산 3일 전 한 콘퍼런스에서 “핀테크·클린테크·애그테크 등 새로운 분야의 회사를 시작하기에 좋은 시기”라며 창업·투자를 독려하기도 했다. 결국 SVB 주주들은 베커와 다니엘 벡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베커는 SVB에 대출 담당자(평직원)로 입사해 CEO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인디애나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코메리카 은행 등 중소은행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상사를 따라 SVB로 이직했다. 2011년부터 CEO를 맡은 그는 SVB를 미국 20대 은행으로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의 무기는 기술 산업을 비롯해 혁신 분야에 투자한 것이다.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은행이 위험을 피하는 전략을 세울 때, 베커는 스타트업 등 잠재력이 있는 투자처에 집중했다. WSJ은 “SVB가 스타트업들에 독점적인 업무 계약을 요청할 수 있던 이유”라고 분석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베커는 파산 선언 직후 직원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회사를 위해 더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서로 힘이 되어주며 고객들을 돕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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