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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67) 봄비 갠 아침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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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봄비 갠 아침에
김수장(1690∼?)

봄비 갠 아침에 잠 깨어 일어보니
반개화봉(半開花封)이 다투어 피는고야
춘조(春鳥)도 춘흥(春興)을 못 이겨 노래 춤을 하느냐
-병와가곡집

볼 것이 많은 봄

봄날 아침에 잠이 깨어 일어나 보니 간밤에 비가 왔었구나. 반쯤 피었던 꽃봉오리가 봄비 맞아 다투어 피어나니, 이 봄날 새들도 흥을 못 이겨 노래하고 춤을 추느냐.

초장에 비, 중장에 꽃, 종장에 새를 그려 봄을 노래하고 있다. 봄이 왜 봄인가? 볼 것이 많아 봄이라는 말이 있다. 귀와 눈을 활짝 열고 이 봄을 맞아야겠다.

김수장은 1760년 서울 화개동에 노가재(老歌齋)를 짓고 가악 활동을 주도했다. 남녀의 애정 관계나 서민의 생활 감정을 담은 사설시조는 익명으로 전해졌으나, 그는 최초로 이름을 밝히고 39수의 사설시조를 남긴 선구자였다.

고려의 시인 정지상은 명시 ‘송인(送人)’에서 “비 갠 긴 언덕 위에 풀빛은 짙고(雨歇長提草色多)”라고 노래했고, 현대의 이수복 시인은 시 ‘봄비’에서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라고 읊었으니 조선의 김수장과 더불어 천 년을 건너뛴 시인들의 감성이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