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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는 씻어먹어 괜찮다뇨" 한국타이어 해명에 분통터진 농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맞은편 충북 청주시 현도면 양지리 마을 열무 농가에서 한 농민이 비닐하우스에 쌓인 시커먼 분진을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맞은편 충북 청주시 현도면 양지리 마을 열무 농가에서 한 농민이 비닐하우스에 쌓인 시커먼 분진을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열무는 물에 씻어 먹어 괜찮다” 한국타이어 해명에 분통 

15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양지리에서 만난 이 마을 이종국(71) 이장은 한국타이어 공장을 바라보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씨는 “9년 전에 이어 또 큰불이 나 불안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평소에도 냄새 때문에 피해를 봤는데 분진 피해까지 이어져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주시 남쪽에 있는 양지리는 지난 12일 불이 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650여m 떨어져 있다. 마을 어귀에 서면 금강 건너 공장이 훤히 보인다. 주민들은 “공장이 타면서 날아온 연기와 먼지가 비닐하우스와 농작물에 내려앉았다”고 주장했다.

20년째 친환경농법으로 마와 도라지·아피오스(인디언 감자)를 기르는 이종국 이장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친환경 토양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농약과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무항생제 비료만 썼다”며 “먼지와 함께 날아온 화학물질이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대형화재가 발생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지난 13일 오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대형화재가 발생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지난 13일 오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청주 현도면 농가 비닐하우스, 농작물 피해 

이 마을 10여 농가는 열무·얼갈이배추·대파 등 채소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다. 대부분 12월~1월 파종한 뒤 3월 중순부터 출하한다. 이날 찾은 한 농가 비닐하우스 곳곳에는 검은 먼지가 보였다. 손으로 비닐을 쓸어 내리자 손바닥에 그을음이 묻었다.

3300㎡ 규모 비닐하우스에서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기르는 오광진(75)씨는 “요즘에는 한낮 온도가 올라 하우스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채소가 금방 시들어 버린다”며 “어쩔 수 없이 환기 때문에 하우스 측면을 개방해 놨더니 먼지가 쌓였다”고 했다. 오씨는 “맨눈으로 확인이 어렵지만, 열무 잎에도 그을음이 내려앉아 출하가 고민된다”고 덧붙였다.

교체한 지 얼마 안 된 비닐하우스를 다시 걷어내는 것을 고민하는 주민도 있었다. 은모(55)씨는 “농작물 피해보다 지난해보다 값이 두배로 뛴 비닐 교체 비용이 더 걱정”이라며 “2014년 화재 때도 멀쩡하던 비닐이 1년이 못 가 부식이 되고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보통은 4~5년은 견디는데 그을음 탓인 것 같다”고 했다.

타이어 21만개가 불타고 제2공장이 전소되는 등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대형 화재가 58시간 만인 15일 오전 완전히 진화됐다. 사진은 이날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전경. 프리랜서 김성태

타이어 21만개가 불타고 제2공장이 전소되는 등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대형 화재가 58시간 만인 15일 오전 완전히 진화됐다. 사진은 이날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전경.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타이어 시험 분석한 뒤 보상 결정 

한국타이어의 미온적인 대응을 문제 삼는 주민도 있었다. 이날 오후 한국타이어에 항의 전화를 했다는 주민 A씨(59)는 “열무 피해 대책을 해결해달라는 요구에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A씨 통화 내용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피해 농작물 종류가 열무와 대파라고 하자 “열무와 대파는 어차피 씻어야 하므로 문제가 없었던 상황이다. 다만 배추는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A씨가 재차 항의하자 “현장으로 가서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A씨는 “열무는 물에 씻어서 먹으니까 괜찮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며 “농작물 피해 보상이 어렵다는 말로 들렸다”고 주장했다.

타이어 21만개가 불타고 제2공장이 전소되는 등 막대한 재산피해른 낸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대형 화재가 58시간 만인 15일 오전 완전히 진화됐다. 이날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 진화작업으로 발생한 폐수가 인근 하천으로 유입되면서 물이 오염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타이어 21만개가 불타고 제2공장이 전소되는 등 막대한 재산피해른 낸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대형 화재가 58시간 만인 15일 오전 완전히 진화됐다. 이날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 진화작업으로 발생한 폐수가 인근 하천으로 유입되면서 물이 오염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날 오후 현장을 찾은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비닐하우스 피해 상황을 확인했다. 시험 분석을 위한 농작물 시료도 채취했다. 한국타이어는 사고대책반을 꾸린 뒤 현지 조사를 통해 보상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종국 이장은 “농산물품질관리원이나 민간업체에 먼지 시료와 토양, 농작물을 보내 정밀 분석을 의뢰할 것”이라며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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