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300조, 하이닉스 120조…용인 ‘세계 반도체 수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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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달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 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달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 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이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호응해 대규모 투자 방침을 밝히면서 용인이 세계적 반도체 도시로 떠올랐다. SK하이닉스 중심으로 추진 중인 원삼면 반도체 클러스터와 이번 남사읍 프로젝트를 더해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생기면 글로벌 반도체 패권 다툼 속에서 K반도체가 새롭게 도약할 계기가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삼성전자는 정부가 2042년까지 용인에 조성하는 710만㎡ 규모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곳에 첨단 반도체 공장 5개를 구축하고, 국내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등 최대 150개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삼성 “20년간 300조원 투자 계획”

업계는 이번 투자 300조원에 생산 유발 효과 400조원을 더해 700조원의 직·간접 생산 유발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되는 직·간접 고용 유발 규모는 160만 명(직접 고용 3만 명)이다.

정부가 경기도 용인을 국가첨단산업단지로 조성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존 반도체 생산단지인 경기 기흥, 화성, 평택, 이천과 연결해 세계 최대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사진은 15일 대규모 시스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일대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경기도 용인을 국가첨단산업단지로 조성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존 반도체 생산단지인 경기 기흥, 화성, 평택, 이천과 연결해 세계 최대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사진은 15일 대규모 시스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일대 모습. 연합뉴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이미 415만㎡ 규모의 메모리 클러스터 조성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남사읍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한 것은 반도체 초격차를 지속하기 위한 현명한 판단”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투자한 원삼면 클러스터에는 SK하이닉스와 50여 개 소부장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700조원 생산 유발 효과 기대  

삼성이 이번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력을 확대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기존 평택과 미국 오스틴 공장에 더해 미국 테일러에 신공장을 건설 중이지만 생산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어서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장(사장)은 이날 “신규 단지를 기존 거점과 통합 운영해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화성·기흥은 메모리·파운드리·연구개발(R&D), 평택·남사읍은 첨단 메모리·파운드리 핵심 기지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2042년까지 용인에 710만㎡ 규모의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2042년까지 용인에 710만㎡ 규모의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업계는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가 ‘실리콘 쉴드(방패)’의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화 단지 지정으로 반도체 생태계가 강화하면 국제 무대에서 K반도체가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과거 장중머우(張忠謀) TMSC 창업자는 “TSMC로 인한 실리콘 쉴드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격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첨단 클러스터가 ‘실리콘 쉴드’ 역할”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통 큰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갖췄지만 정부 지원과 규제에서 아쉬운 측면이 많았다”며 “오늘 발표는 민간 주도의 혁신 성장을 위한 새로운 민관 협업 모델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인력 양성에도 더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장 짓기가 워낙 힘든데 정부가 나서서 부지와 인프라 구축을 해주겠다는 뜻”이라며 “미국의 제재가 심해지니 미국 투자를 최소화하고, TSMC처럼 자국 내에서 경쟁력을 올리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윤석열 통 큰 결단” “미·중 사이 최선”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향후 5~7년쯤 뒤 파운드리 선두에 도전하는 걸 염두에 둔 전략으로 보인다”며 “중국 라인 재투자가 불가하고, 미국 제재가 있어 유일한 선택지였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우수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실리콘밸리보다 더 좋은 교통·주거·교육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최선의 결정이며 미래를 위한 엄청난 저축”이라며 “긴 호흡의 인력 양성이 중요한 만큼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인력 교육에 비용을 투입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날 주요 외신도 정부와 삼성의 투자 계획을 비중 있게 다뤘다. 블룸버그통신은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가장 공격적 노력”이라며 “삼성의 투자는 글로벌 반도체 제조를 이끌겠다는 한국의 야망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이 최첨단 공장을 자국에서 운영하면서 미국에서도 일정한 양산 규모를 확보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문가들 “인력 양성에도 더 힘써야”

이날 삼성은 수도권 외 지역 투자 계획도 밝혔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전기 등 주요 계열사가 앞으로 10년간 60조1000억원을 지방에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먼저 충청권에는 반도체 패키지 특화단지(천안·온양), 첨단 디스플레이 클러스터(아산), 차세대 배터리 연구·생산 시설(천안) 등을 구축한다. 차세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생산 거점(부산)과 첨단소재 특화 거점(구미)은 경상권에 둔다. 삼성전자의 플래그십(전략 모델) 스마트폰을 연간 1600만 대 생산하는 구미 사업장은 글로벌 스마트폰 마더 팩토리(제품 개발과 제조의 중심의 되는 공장)로 육성한다. 호남권에는 현재 광주 사업장에서 생산하는 가전제품을 프리미엄 스마트 제품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방침이다.

삼성, 수도권 외 지역에도 60조원 투자  

이 밖에도 10년 동안 3조6000억원을 투입해 지역 기업을 위한 반도체 생태계 육성 프로그램, 기술·자금 지원, 지역 인재 양성 지원 등을 추진한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 후 광주사업장 등 지역 사업장을 돌며 상생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강조한 바 있다.

한편 LG그룹도 이날 2027년까지 신사업에 54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배터리·전장 등 미래 자동차 관련 산업과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분야에 44조원을,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바이오·헬스케어·클린테크(환경기술) 분야에 약 10조원을 각각 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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