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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은 내 측근" 盧는 고개 숙였다…이재명과 달랐던 선택 [위기의 이재명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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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검찰의 과도한 압박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재명 때문입니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경기도 현장최고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이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낸 전모씨가 숨진 것에 대해 “수사당하는 게 제 잘못인가. 검찰의 이 미친 칼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의 이 발언 후 며칠이 지났지만, 당내에선 미묘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비명계로 꼽히는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발언을 콕 집어 “검찰 탓만 하는 건 좀 문제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비판했다. “한 분이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접었다는 이 엄중한 현실 앞에서 자신의 부덕함을 먼저 고백하고 사과하는 것이 익숙히 봐온 것이고 도리”라는 이유에서다. 당 지도부 관계자도 “감정이 다소 격해져서 나간 메시지인데, 그런 표현은 하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 대표는 같은 날 전씨 사망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했다. 그는 당사에서 열린 ‘당원존 라이브’ 행사에서 “제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당한 일이라서 저는 어떤 방식이든 간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체포동의안 박빙 부결에 대해서도 “제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이 대표가 말로만 책임을 얘기한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특히, 지난달 22일 권노갑 상임고문이 이 대표에게 “다음번에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임해서 역사 있는 전통의 민주당 대표로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솔선수범하는 선당후사의 정신을 발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한 뒤부터 과거 민주당 지도자들의 ‘책임정치’와 비교하는 시선이 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시절이던 1989년8월 3일 여의도 당사앞에서 당원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서경원 의원 밀입북 관련 참고인으로 안기부의 구인집행에 응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시절이던 1989년8월 3일 여의도 당사앞에서 당원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서경원 의원 밀입북 관련 참고인으로 안기부의 구인집행에 응하고 있다.

먼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처신에 빗대는 이들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야당 총재 구인 사태가 벌어진 19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비교한다.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DJ는 서 의원의 밀입북과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1989년 8월 3일 서울 중부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DJ의 경찰 출석 소식에 지지자들은 원효대교 입구에서 DJ의 차량을 가로막았으나, 외려 DJ는 “진실을 밝히러 가니 길을 열어 달라”며 만류했다. DJ는 『김대중 자서전』에 “당당히 구인에 응해서 저들(여권)의 비열한 작태를 정면으로 꾸짖기로 했다”고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측근 비리에 대해 여러 차례 직접 사과한 것도 자주 회자된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수사 결과가 무엇이든 그동안 축적된 국민 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다”며 “최 전 비서관은 약 20년 동안 나를 보좌해왔기 때문에 그 행위에 대해 내가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입이 열 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2003년 10월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SK비자금 수수 의혹에 사과하며 재신임을 국민에게 묻겠다고 밝히고 있다.

2003년 10월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SK비자금 수수 의혹에 사과하며 재신임을 국민에게 묻겠다고 밝히고 있다.

같은 해 최측근이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나라종금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도 노 전 대통령은 TV토론 방송에 출연해 “안희정은 내 측근”이라며 “국민께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노 전 대통령은 법무부로부터 나라종금 사건의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수사가 중단됐다고 하는데, 만약 내가 걸림돌이라서 그랬다면 전혀 그런 정치적 고려를 할 필요가 없으니 수사를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선 “이 대표에게도 DJ나 노 전 대통령 같은 지도자다운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하물며 대통령도 그렇게 책임지고 신뢰를 얻으려 했는데, 지금 이 대표는 그런 모습이 없으니 모든 것이 다 ‘방탄’으로 비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재선 의원도 “최소한 다음 영장이 오면 직접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겠다고 하거나, 총선에 부담이 되면 거취 결단을 하겠다고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지도자다운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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