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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저항' 부른 근로시간제 개편…보완책 전문가 의견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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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주 최대 69시간까지 가능한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대한 본격적인 재검토에 나섰다. MZ세대 근로자를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보완을 지시하면서다. 정부는 ‘근로시간 유연화’라는 큰 틀은 유지하는 방향에서 세부 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김은혜 홍보수석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15일 브리핑을 통해 “노동시장 정책 핵심은 MZ근로자, 노조 미가입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 노동 약자의 권익 보호”라며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노동 약자의 여론을 더 세밀히 청취한 뒤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달 휴가’ 현실성 지적…“사용자 악용 여지 많아”

고용노동부가 지난 6일 발표한 근로시간제 개편안은 현행 주52시간제의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 단위에서 노사 합의를 전제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일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쉴 때 길게 쉬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특정주에 최대 69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에선 장시간 근로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여기에 ▶‘한 달 휴가’ 등 장기간 연차 사용의 비현실성 ▶사용자 측의 제도 오남용 가능성 ▶정부 관리감독에 대한 불신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회적 반발이 커졌다. ‘MZ노조’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의 송시영 부의장은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사용자 측이 악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도 노동자 입장에서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느껴진다. 현행 주52시간제조차 제대로 안 지켜지는 현실에 비춰 신뢰 가능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尹정부 ‘주52시간제’ 개편 방안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고용노동부]

尹정부 ‘주52시간제’ 개편 방안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고용노동부]

‘큰 틀’ 유지…“행정감독 장치 강화” “연속휴식 의무화”

구체적인 보완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우선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확대’라는 틀은 유지하되, 개편안이 취지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행정감독 장치를 강화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으로서 근로시간제 개편의 골격을 설계한 권순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MZ세대가 우려하는 것은 사용자 강요로 인해 원하지 않는 근로시간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근로자대표제를 실효성 있게 정비해 노사간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협의가 가능하도록 했는데, 만약 이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엔 형사처벌 등 행정이 강하게 개입해야 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당초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제안했던 ‘연속휴식 의무’를 단일안으로서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입법예고된 최종 정부안은 ‘11시간 연속휴식 의무’ 혹은 ‘주 최대 64시간 제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했지만, 노동계에선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포기했다’는 강한 반발이 나왔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하게 진행될 수 있는 만큼 최소한의 휴식시간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연속휴식 부여를 의무 사항으로 두되, 11시간이 부담스럽다면 9시간, 10시간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정식(왼쪽)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근로시간 기록, 관리 우수사업장 노사간담회 시작 전 민주노총 청년회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와 피켓시위를 하자 시위 종료를 부탁하고 있다. 뉴시스

이정식(왼쪽)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근로시간 기록, 관리 우수사업장 노사간담회 시작 전 민주노총 청년회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와 피켓시위를 하자 시위 종료를 부탁하고 있다. 뉴시스

일각 ‘전면 재검토’…“선후관계 잘못됐다”

노동계에서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근로시간제 개편에 앞서 근로자 보호 장치가 먼저 마련됐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기본적으로 다른 선진국보다 근로시간 총량이 많은데, 정작 근로시간은 거의 줄이지 않은 채 유연화만 추진하다 보니 반발이 나왔다”며 “평소에 다 쓰지도 못하는 유급휴가 사용을 늘릴 수 있는 방안 등을 강구해 근로시간 총량을 단축시킨 이후에 유연화를 추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도 ▶포괄임금제 금지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 ▶근로자대표제 법제화 등의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장갑질119 측은 “‘야근 갑질’의 주범인 포괄임금제는 오남용을 감독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며 “근로시간 기록을 의무화해 야근수당을 떼먹는 악질 사업주를 규제하고, 근로자대표제를 입법화해 불법이 만연한 유연근무제에 대해 노동자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최대 69시간 하향?…고용장관 “모든 가능성 열어”

‘69시간’이라는 주 최대 근로시간을 하향 조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용부는 근로시간제를 개편해도 전체 근로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MZ근로자들에게 “주52시간제에서 주69시간제로 바뀐다”는 인식이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 최대 69시간이 바뀔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은 다 열어놓고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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