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나라’ 영국과 이탈리아의 선전…야구의 세계화는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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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트레이스 톰슨(왼쪽)과 해리포드. AP=연합뉴스

영국 트레이스 톰슨(왼쪽)과 해리포드. AP=연합뉴스

“역사적인 승리였다.”

미국 CBS스포츠는 14일(한국시간) 일어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대이변을 단 한마디로 표현했다. 주인공은 ‘축구 종가’ 영국이었다. 이날 영국은 미국 애리조나주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 C조 콜롬비아전에서 7-5 깜짝 승리를 거뒀다. 경기 초반 0-3으로 끌려갔지만, 5회말 전세를 뒤집은 뒤 리드를 지켜 감격을 맛봤다.

말 그대로 역사적인 승리였다. 영국은 잘 알려진 대로 축구의 나라다. 축구라는 종목이 탄생한 곳이 바로 영국이다. 프리미어리그라는 세계 최고의 리그를 보유하고 있고, 월드컵에는 영연방 4개국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나뉘어 출전한다.

이처럼 영국은 축구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자존심이 있다. 그러나 야구는 이야기가 다르다. 여느 유럽 국가처럼 야구 인구가 그리 많지 않다. 프로 리그는 당연히 없고, 국제무대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낸 적 역시 없다. 이런 영국이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를 꺾고 WBC 통산 첫 번째 승리를 신고하자 외신은 “이변이 일어났다”고 앞 다투어 보도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변은 영국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 WBC에선 유독 야구 변방으로 불리던 나라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영국처럼 축구가 국기(國技)로 통하는 이탈리아는 ‘죽음의 조’라고 여겨졌던 A조에서 살아남았다. 대만과 파나마, 네덜란드 등 강호들을 제치고 1위 쿠바와 함께 8강행 티켓을 따냈다. 이탈리아 선수단에서 야구팬들이 알 수 있는 이름이라고는 전직 메이저리거 포수인 마이크 피아자 감독뿐이다.

비록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체코의 분전도 박수를 받았다. 현역 메이저리거 한 명 없이 자국의 사회인 야구선수들로 전력을 꾸린 체코는 한국과 호주, 일본 등을 상대로 연일 선전했다. 또, 만년 약체로 평가됐던 중국 역시 확연히 달라진 경기력을 보이면서 상대를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 선수들이 12일 열린 WBC 1라운드 A조 네덜란드전에서 7-1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탈리아 선수들이 12일 열린 WBC 1라운드 A조 네덜란드전에서 7-1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까지 KBO 기술위원장을 지낸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의 눈에도 이번 대회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염 감독은 14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시범경기를 앞두고 “과거의 유럽 야구가 아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야구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고, 인프라도 좋아지고 있다.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일단 기본기가 탄탄해졌다. 던지는 매커니즘은 물론 타격폼과 수비 자세 모두 좋아졌다. 이번 WBC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결국 기본기가 뒷받침돼야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 유럽과 중국이 이를 증명했다”고 덧붙였다.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국가와 중국 등은 한국이 쉽게 잡고 가는 상대로 여겨졌다. 초점은 오로지 일본과 대만, 미국, 쿠바 등 강호에만 맞춰졌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쉽게 생각할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염 감독은 “한 예를 들자면, 중국 외야수들에게서 여유를 느낄 수가 있다. 과거에는 허둥대면서 공을 잡기 바빴는데, 이제는 웬만한 프로선수처럼 여유롭게 공을 따라가서 캐치한다”면서 “이전에는 구력이 있는 네덜란드 정도만 복병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국가별 야구의 격차는 앞으로 계속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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