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는 삼국지](18) 신궁 여포는 전쟁을 막고, 흑심 품은 조조는 간신히 살아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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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은 손책을 치는 것을 뒤로 미루고 먼저 유비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수하인 양대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포에게 양곡 12만 섬을 밀서와 함께 보냈습니다. 밀서의 내용은 원술이 유비를 공격할 때 군사를 움직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포는 기뻐하며 수락했고, 원술은 기령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유비를 잡도록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비는 여포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나관중본에는 유비의 편지를 본 진궁이 여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실려 있습니다.

유비가 지금은 비록 곤경에 빠졌지만 오래 지나면 반드시 세상을 종횡으로 누비면서 장군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구해주지 마십시오.

여포는 진궁이 말하지 않아도 원술의 속셈을 간파했습니다. 원술이 유비를 처리한 후 자신을 노릴 것임을 말입니다. 그래서 여포는 유비를 구원하려고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여포가 유비를 지원하기 위해 오자 기령이 여포를 책망했습니다. 여포는 ‘양쪽이 모두 나를 원망하지 않게 하겠다’며 각각의 영채로 사자를 보내 유비와 기령을 불렀습니다. 급한 유비가 먼저 왔습니다. 여포가 유비를 안심시켰습니다.

내 이제 특별히 공의 위기를 해결해줄 테니, 훗날 뜻을 이루더라도 잊으면 아니 되오.

여포는 두 사람과 술잔을 몇 번 나누고 자신의 화극을 원문 밖에 꽂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안합니다.

원문이 여기서 150보(步)쯤 떨어져 있소. 내가 이 화살 한 대로 화극의 작은 날을 쏘아 맞힌다면 싸움을 그만두고, 만일 못 맞히면 그때는 싸워도 좋소.

여포가 활로 원문의 화극을 맞혔다는 사극대(射戟臺). [사진 허우범작가]

여포가 활로 원문의 화극을 맞혔다는 사극대(射戟臺). [사진 허우범작가]

유비는 당연히 찬성했습니다. '여포가 꼭 맞히게 해달라'고 하는 축수(祝手)까지 했습니다. 기령은 ‘설마 저걸 맞힐 수 있겠느냐’며 허락했습니다. 드디어 여포가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짧은 기압 소리와 함께 활을 쏘았습니다. “착(着)!” “맞아라!”. 여포가 쏜 화살은 귀신같이 화극의 작은 날을 맞혔습니다. 유비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부끄러웠고, 기령은 눈을 의심하다가 이내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신궁(神弓) 여포를 찬양하는 시가 있으니 그냥 지나갈 수 없지요.

여포는 세상에 제일가는 신궁 溫侯神射世間稀
원문에 활 맞춰 혼자서 전쟁을 막았네. 曾向轅門獨解危
해를 떨어뜨렸다는 후예도 한 수 아래요 落日果然欺后羿
원숭이를 울렸다는 양유기보다도 고수네. 號猿直欲勝由基
시위를 당긴 줄이 과녁을 향해 울고 虎筋弦響弓開處
매깃 바람 가르며 화살은 날아 雕羽翎飛箭到時
화극날 맞히며 꼬리장식 흔드니 豹子尾搖穿畵戟
십만 장병 일제히 싸움을 멈추네. 雄兵十萬脫征衣

기령이 여포의 편지를 가지고 돌아오자 원술은 대로했습니다. 이에 기령은 여포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해 인척이 된 후, 여포가 유비를 죽이도록 하는 ‘소불간친계(疏不間親計)’를 제안합니다. 원술은 한윤을 보내 혼담을 주선토록 했습니다. 여포의 처인 엄씨가 적극적으로 찬성하자 여포도 흔쾌히 수락합니다. 진궁은 원술의 계략을 간파했지만 오히려 서둘러 혼사를 치를 것을 주문했습니다. 신이 난 여포는 혼수를 장만해 딸을 보냈습니다.

진등의 부친인 진규가 이 사실을 알고는 여포를 만나 원술의 계략을 알려주었습니다. 놀란 여포는 장요를 시켜 한윤을 붙잡고 딸을 데려옵니다. 여포가 이처럼 유비를 생각하며 원술의 계략에 속지 않고 있을 때, 장비가 여포의 말 150마리를 빼앗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로한 여포가 군사를 몰고 소패로 달려갔습니다. 유비도 황망히 군사를 이끌고 나왔습니다. 여포가 유비에게 따지자 여포라면 이를 가는 장비가 싸움을 걸었습니다. 여포도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장비가 분개하며 여포의 가슴팍에 대못을 박는 말을 퍼부었습니다.

너는 내가 네 말을 뺏었다고 성질을 부리면서 어째서 네가 우리 형님의 서주를 뺏은 데 대해서는 말이 없느냐?

두 사람은 씩씩대며 1백여 합을 싸웠습니다. 유비는 징을 쳐서 장비를 불러들였습니다. 유비는 장비가 여포와 싸울 동안 속으로 이겨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유비가 여포에게 말을 돌려주겠다고 하자, 여포는 이쯤에서 싸움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궁이 이 기회에 유비를 없애야 한다고 진언하자 여포는 계속 유비를 공격했습니다. 결국, 유비는 소패를 버리고 허도(許都)의 조조에게로 도망쳤습니다.

조조의 뛰어난 참모인 곽가.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의 뛰어난 참모인 곽가.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는 유비를 처단해야 한다는 순욱과 순유의 말보다는 곽가의 의견대로 유비를 받아들입니다. 이어 유비를 예주목(豫州牧)으로 표천(表薦)하고 군사와 군량을 지원해줬습니다. 그리고 함께 여포를 치려고 할 때, 장수가 허도와 지척인 남양(南陽)의 완성을 공격해 점거하고 허도를 노린다는 급보가 날아옵니다. 조조는 여포에게 벼슬을 후하게 올려주어 안심시키고 직접 대군을 이끌고 남양으로 향했습니다.

조조의 대군에 기세가 눌린 장수는 참모 가후의 말대로 투항했습니다. 조조는 완성에 무혈 입성했습니다. 장수는 며칠간 조조에게 향연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조조는 장수의 숙모인 추씨의 미색에 반해 몰래 그녀를 불러들이고는 슬며시 흑심을 드러냅니다. 이 부분은 월탄(月灘)의 문장으로 읽어야 영화처럼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나는 장씨네 집안을 멸족시키려 했는데, 오늘 부인을 만나게 되니 이것도 천생연분인가 보오. 하하하, 부인의 낯을 보아 앞으로 용서하겠소.

미인 추씨는 다시 일어나 두 번 절하며 나직하게 고했다.

저희 집안을 재생시켜 주신 승상 각하의 태산 같은 은혜를 어찌하면 다 갚겠습니까?

조조는 다시 추씨의 손을 잡았다. 과부 추씨는 조조의 손을 뿌리치지 아니했다.

조조는 추씨를 데리고 영채로 돌아와 두문불출하고 지냈습니다. 결국, 장수가 이 사실을 알고 조조를 처단하기 위해 계략을 펼칩니다. 근위대장인 전위를 취하게 만든 후, 그의 무기인 쌍철극을 훔쳐내고 한밤중에 조조의 영채를 기습했습니다. 취해있던 전위는 갑옷도 걸치지 못한 채 칼 한 자루로 적병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 결국 피를 쏟으며 죽었습니다. 조조는 전위가 죽음으로 막는 사이에 달아났습니다. 그 와중에 조카 조안민과 큰 아들인 조앙을 잃었습니다. 남의 부인을 탐한 죄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맨 몸으로 조조를 구하는 전위 [출처=예슝(葉雄) 화백]

맨 몸으로 조조를 구하는 전위 [출처=예슝(葉雄) 화백]

모종강은 이 부분에서 조조를 평하길,

동탁은 남의 부인을 좋아했고 조조 역시 남의 부인을 좋아했다. 그래서 동탁은 여포의 손에 죽었는데 조조는 장수의 손에 죽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동탁이 죽은 것은 심복맹장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고, 조조가 죽지 않은 것은 심복맹장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로 보아 흥망성패는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어찌 여인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데 달려 있겠는가.

목숨을 건진 조조는 전위의 제단(祭壇)을 마련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울며 말했습니다.

내 큰 자식과 조카를 잃은 슬픔은 그나마 참을 수 있겠으나, 전위를 생각하면 울지 않고는 못 견디겠구려.

이 부분을 읽을 때면 당시 영웅호걸이라는 자들의 공통된 인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처나 자식보다는 충성스런 의형제나 부하를 선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유비도 형제는 수족이지만 처와 자식은 의복에 불과하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제와 부하들을 감동하게 해 더욱 충성하게 만드는 연기에 불과한 것이지요. 조조나 유비 모두 후흑(厚黑)의 대가들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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