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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창밖에는 봄 오고요, 비는 샀고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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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민정 시인

김민정 시인

근 한 달 전 직장 후배로 십여 년 격의 없이 지내던 한 친구를 잃었다. 삼십 대 후반, 월요일 퇴근 후 늦은 밤 갑작스러운 심정지. 한라산에 간답시고 연이틀 놓친 몇 통의 전화 가운데 그의 남편 번호도 있었다. 빠르면 주말, 늦어도 월요일에는 떠날 것 같다네요. 유난을 떨까 폐가 될까 늘 주변 사람 배려에 급급이던 평소답게 그는 담당의의 말이 혹여 허언이라도 될까 제 돌아갈 날을 토요일로 삼더니 그날을 넘기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그 일생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간다와 갔다로 표기해도 필시 억지는 아니리라. 나는 살아 너에게 가고 있는데 너는 죽어 어디로 갔을까. 서로 갈리어 멀어짐, 그 이별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직진과 후진으로 표기해도 가히 무리는 아니리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해 늦봄, 암으로 세상을 뜬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온 지 며칠 안 되었던 친구가 교실 청소를 하려 창을 열며 중얼거렸던 말. 우리 엄마 어디로 갔을까. 일순 내 말문을 탁 막아버린 말. 빗자루질은 네가 해, 대걸레질은 내가 할게. 시방 깜깜해진 사방, 수돗가에서 대걸레를 비벼 빨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느릿느릿 교실 바닥을 쓸고 있던 친구 곁에 다가가자 새빨개진 눈으로 북받친 듯 내뱉던 말. 있잖아, 우리 엄마가 목구멍 안에 있어.

근 30년이 되었는데 잊히지 않는 말. 고등학교 3학년 자율학습 시간 일기장에 적혀 지금껏 살아남은 말. 죽어도 닭 모가지는 안 먹게 만들어버린 말. 어쩌다 황망한 부고가 전해지는 날이면 하릴없이 빗자루를 집어 들고는 한다. 먼지는 털어야 보이고 먼지는 쓸어야 쌓인다 할 적에 가만, 우리 모두 먼지라는 가느다랗고 보드라운 티끌들의 합집합 아니려나. 쇼핑몰에 들어가 작은 데스크용 솔을 하나 주문했다. 후배는 유독 그린이 잘 어울리던 친구였다. 때로 어떤 봄은 이렇게도 들이닥치나 보다.

김민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