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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종학의 경영산책

‘우영우’를 낳은 건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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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2022년 ‘재벌집 막내아들(JTBC)’, ‘천원짜리 변호사(SBS)’, ‘슈룹(tvN)’,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등의 프로그램이 20%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필자는 주인공 박은빈 씨가 신들린 듯한 연기를 보여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상 깊었다. 이 드라마 이전까지 ENA라는 채널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ENA는 KT의 계열사 스카이라이프의 채널이다. 2021년은 어떨까. ‘미스트롯2(TV조선)’와 ‘펜트하우스2(SBS)’가 시청률 35%라는 놀랄만한 기록을 달성했다. 2020년에는 ‘낭만 닥터 김사부2(SBS)’, ‘미스터트롯(TV조선)’, ‘부부의 세계(JTBC)’, ‘사랑의 불시착(tvN)’이, 2019년은 ‘스카이캐슬(JTBC)’과 ‘미스트롯(TV조선)’이 인기를 끌었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는 흔히 지상파 3사라고 불리는 KBS, MBC, SBS가 시청률 선두에 있고 다른 방송사들은 이들에 한참 뒤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위 명단을 보면 SBS가 포함되어 있을 뿐 다른 두 방송사는 한 프로그램도 명단에 올리지 못했다. 이것이 우연일까.

비지상파 드라마 갈수록 두각
성과 따른 인센티브 효과 발휘
보상 체계 미흡 지상파와 대비

채널 평균 시청률 차이는 박빙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개별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채널의 평균 시청률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시청률이 전체적으로는 낮더라도 개별 프로그램 하나만 높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사별 평균 시청률이 어떤지 찾아봤다. 1위는 KBS이고, 그 뒤를 6개의 다른 채널들이 추격하고 있다. KBS를 제외하면 2위와 7위의 시청률 차이가 1%p뿐일 만큼 박빙이다. 7위까지의 명단에 CJ ENM이 없는데, CJ ENM이 보유한 tvN, Mnet, Olive 등 여러 채널의 시청률을 합치면 KBS 다음이라고 전해 들었다. 또한 CJ ENM의 채널들은 TV가 아니라 OTT를 통해 시청하는 젊은 마니아층이 많아서 콘텐트의 영향력은 시청률 자체보다 월등히 높다. 예를 들어 Mnet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는 시청률 3%에 불과했지만 영향력은 엄청났다. 무명이던 출연자들 다수가 방송 이후 데뷔를 하고 광고도 찍었다. 채널A의 ‘하트 시그널’과 ‘강철부대’도 비슷한 경우다. 어쨌든 평균 시청률을 봐도 지상파 3사 중 일부는 이미 CJ ENM에게 뒤졌고, 다른 케이블 TV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청률이 아니라 콘텐트의 영향력을 비교하면 지상파 3사는 상대적으로 더 떨어진다.

CJ나 KT야 오래전부터 방송을 해왔으니 이해가 되지만, 언론사가 모회사인 종편 TV는 불과 11년 전에 출범했다. 당시 필자가 여러 경로로 만났던 지상파 3사 관계자들은 종편 TV가 시청률 1%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었다. 돈을 쏟아붓다가 모회사인 신문사도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청률만 가지고 방송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청률은 방송사의 능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놀랄만한 변화가 일어났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정확한 이익의 계산과 성과평가에 따른 보상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지상파 TV는 프로그램이나 채널별 정확한 이익의 계산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성과에 따른 보상도 미미한 수준이라고 알려졌다. 시간만 지나면 대부분 자동으로 승진하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업무성과는 거의 무시하고 특정 정파에 줄을 잘 대는 것이 승진 비결인 회사도 있다고 전해 들었다. 즉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할 인센티브가 적다. 필자가 만난 모 PD의 이야기에 따르면, 유일한 인센티브는 유능하다는 평판을 얻어 다른 회사에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되는 것이라고 한다. 과장된 내용일 수 있겠지만 이런 극단적 불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회사에 문제가 많다는 의미다.

지상파 떠나는 스타 PD들

tvN 드라마 ‘슈룹’. [사진 tvN]

tvN 드라마 ‘슈룹’. [사진 tvN]

그렇지만 케이블 TV사들은 사정이 다르다. tvN에서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등 히트작을 양산한 나영석 PD와 ‘응답하라’, ‘슬기로운 생활’ 시리즈의 신원호 PD는 KBS 출신이다. TV조선 트롯 시리즈를 처음 기획한 서혜진 PD는 SBS 출신이다. ‘MBC의 간판’이라고 불렸던 김태호 PD도 독립해서 회사를 차렸다. 이들이 지상파 3사를 떠난 것은 ‘일한 대가를 제대로 보상받고 싶다’는 소박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MZ세대의 가장 큰 불만이 자신들이 기여한 것에 걸맞은 공정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인데, 40~50대 직원들의 생각도 똑같을 것이다. 공정한 보상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이 얼마나 이익 창출에 기여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회계 시스템이 필요하다. 즉 특정 프로그램 제작에 얼마의 원가가 투입됐고 얼마의 수익이 창출됐는지 알아야 한다.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결과를 기반으로 모두가 납득할 만한 기준을 만들어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지상파 TV가 유능한 인재들로부터 점차 외면받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방송사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만, 이는 다른 기업(공공기관이나 대학)에도 다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유능한 직원뿐만 아니라 소비자나 고객들도 점차 외면할 것이고, 그 결과 당장은 아니라도 장기적으로 생존의 위험에 처할 것이다. 우리 회사의 현실은 어떤지 생각해 보자.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