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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찾기' 40주년…75세 아나운서, 美다큐 주인공 나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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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0주년을 맞은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1983) 진행자 이지연 아나운서가 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유네스코 등재 기념 벽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올해 75세인 그는 여전히 라디오, TV 방송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활약하는 현역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 40주년을 맞은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1983) 진행자 이지연 아나운서가 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유네스코 등재 기념 벽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올해 75세인 그는 여전히 라디오, TV 방송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활약하는 현역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방송 마지막 날, 사실은 저도 이산가족이란 얘기를 하면서 시청자한테 약속을 했어요. ‘여러분의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한 분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요. 지금도 제겐 마음의 숙제죠.”

40년 전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1983)를 진행한 아나운서 이지연(75) 씨에겐 올해가 참으로 뜻 깊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40주년을 기념한 다큐멘터리가 미국에서 제작되는데, 그가 직접 출연해 자신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83년 한국전쟁 33주년을 맞아 기획돼, 138일간 1만건 넘는 이산가족 상봉을 이뤄냈다. 단일 주제 생방송으로 세계 최장 연속 시간 기록을 세워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를 6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났다.
자신도 이산가족 출신인 그는 3살 때 전쟁통에 헤어졌다가 2000년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해후한 오빠 리래성 씨와의 눈물겨운 2박 3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오빠가 김일성 예술대학 교수 겸 인민배우가 된 걸 그때서야 알게 됐다.

40주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美다큐 주인공 된 이지연 아나운서

"이발소에 맡겨져, 날씨 흐렸다" 두 문장에 "내 동생" 오열

이번에 제작되는 다큐멘터리는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현직 프로듀서가 감독을 맡아, 전세계에 흩어진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3부작에 걸쳐 조명할 예정이다. 해외에서 한국 이산가족 문제를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1부에선 이씨가 83년 당시 가장 눈물겨운 상봉으로 회자된 허현철‧현옥씨 남매와 함께 주인공이 되어 카메라 앞에 선다. 허씨 남매는 “어렸을 때 이발소에 맡겨두고 갔다. 날씨가 흐렸다”는 동생의 두살 때 기억 몇 마디로 서로 핏줄인 걸 알아보고 각각 대전‧제주에서 달려와 반나절 만에 부둥켜 안으며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셨다.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서 이산가족이 다른 지역에 있는 가족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서 이산가족이 다른 지역에 있는 가족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당시 신청 번호를 쓴 피켓을 든 이산가족이 벽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당시 신청 번호를 쓴 피켓을 든 이산가족이 벽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KBS는 1983년 6월 30일부터 138일간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영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도 이산(離散)의 아픔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여의도 KBS 방송국 주변을 가득 메운 이산가족과 그들의 사연을 적은 편지들. 중앙포토

KBS는 1983년 6월 30일부터 138일간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영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도 이산(離散)의 아픔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여의도 KBS 방송국 주변을 가득 메운 이산가족과 그들의 사연을 적은 편지들. 중앙포토

이씨는 자신 뿐 아니라 끝내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그는 “방송 당시 가족인 걸 알아보고도 자신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모른 척 돌아나간 이산가족도 있었다”면서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가족이 더 많다"고 돌이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로 “쪽진 머리에 한복 입고 딸을 찾으러 여의도 일대를 헤맸던 이소저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때 이미 예순이 넘으셨는데 결국 상봉하지 못했다”면서 "당시 10만명 넘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대다수가 고령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KBS에 따르면, 한달 평균 300~400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고, 생존자 4만2000여명은 73년째 가족과 생이별 중이다.

상봉해도 또 못 봐…2차 이산 비극 

북에 오빠를 둔 이씨도 비슷한 처지다. 그는 “18세 때 사라진 오빠를 5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아버지가 생전 오빠를 다시 만나면 막내인 제가 제사 지방 쓰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머니는 끝내 오빠를 못 보고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또 “1차 상봉 때 오빠가 고기도 잘 못 드시고 ‘아파트로 이사 가서 따뜻한 물에 목욕한다. 행복하다’고 하시는 걸 보며 가슴이 아팠다. 호텔(상봉장) 천장의 스프링클러를 보고 ‘저거, 우리 찍는 거 아니냐’고도 하셨다”고 돌이켰다.

아나운서 이지연씨가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오빠 리래성씨와 오찬 상봉을 마친뒤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중앙포토

아나운서 이지연씨가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오빠 리래성씨와 오찬 상봉을 마친뒤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중앙포토

이씨는 이후 오빠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 3~4년간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오빠의 칠순 즈음엔 임진각에 가서 오빠의 이름이 적힌 리본을 만지며 울다 오기도 했다. 최근엔 군산에 있던 부모님 묘를 북녘 땅이 잘 보이는 파주로 이장했다. "부모님 묘 비석에 오빠 이름도 새겼다"는 그는 그렇게 아픔을 삭인 세월을 “제2의 이산”이라고 표현했다.
지난달 이산가족 주제로 방송된 ‘시사기획 창’(KBS1)에선 20여회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후 재회하지 못 하는 가족들의 후유증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씨는 “어느 교수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민족사로 다뤄야 할 이산의 비극을 개인사로 방치한 정부의 직무 유기, 국가 태만’이라 했는데 공감한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도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방송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산가족의 희망까지 엇갈리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번 다큐멘터리처럼 해외로 확장된 관심이 이산가족 상봉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하면서다.

"민족사 비극을 개인사로 방치한 국가태만" 

“40년 전엔 온 국민이 전쟁의 동병상련을 겪었기에 일심동체가 됐지만, 요즘 세대는 통일, 남북이 같이 사는 문제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잘 모르더군요. 바른 역사 교육이 있어야죠.”
그는 10년 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50주년이 됐을 땐 이 비극이 잊힐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제대로 된 남북 이산가족 기념관 설립을 꿈꾸게 된 이유다. “거제 포로수용소,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에 가서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죠. 왜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는지, 가족이 왜 소중한지 다음 세대에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1983년 7월17일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에서 유철종 아나운서(좌)가 이지연씨와 함께 사회를 보고 있다. 중앙포토

1983년 7월17일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에서 유철종 아나운서(좌)가 이지연씨와 함께 사회를 보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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