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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비에 '수퍼갑' 타워크레인 태업…"공사 밀려" 현장선 발동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재개발 신축공사 현장에서 국토교통부 등 기관 관계자들로 구성된 건설 현장 점검팀이 타워크레인 운용과 관련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재개발 신축공사 현장에서 국토교통부 등 기관 관계자들로 구성된 건설 현장 점검팀이 타워크레인 운용과 관련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대전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타워크레인 7~8대가 우뚝 솟아 있었지만, 대부분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운행 속도가 느려서다. 기사가 건축 자재를 옮기기 위해 줄을 내려보내는 데도 10분 넘게 걸렸다. 하도급사 대표 A씨는 “기사가 스윙(크레인 이동)할 때도 밑에 사람이 있다고 운행을 수십 분 동안 안 한다”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30층짜리 아파트를 짓는데 3~4개월은 더 걸릴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업체는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이동식 크레인을 쓰고 있다. A씨는 “이동식은 대여비가 비싸지만 그마저도 없어서 못 쓸 판”이라고 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태업에 전국 건설 현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작업 속도가 늦춰져 공사가 지연되고, 건설 하도급·원청사는 그에 따른 비용이 늘까 봐 애를 태운다. 정부가 이달부터 월례비(일종의 상납금)를 받은 타워크레인 기사의 면허를 정지하기로 하자, 이에 반발한 기사들이 ‘준법투쟁’에 나선 결과다. 타워크레인은 철근이나 거푸집 등 자재를 상층부로 옮기는 장비로, 고층 건물 공사에선 필수적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타워크레인 기사가 일삼는 태업 행태는 크게 세 가지다. 자재를 일부러 천천히 운반하거나 인양물이 없어도 시간을 지체시키는 게 대표적이다. 주 52시간제를 핑계 삼아 추가 근무도 하지 않는다. 이전엔 그날 계획한 공정을 마치지 못하면 초과 근무 수당을 받고 작업했었다. 바람이 불거나 인양물 아래에 사람이 보이면 안전을 이유로 운전을 멈추는 일도 빈번하다. 현장에선 “기사들은 준법투쟁이라고 하는데, 월례비를 받을 땐 불법으로 작업한 것이냐”는 불만이 나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재개발 신축공사 현장을 방문해 타워크레인 운용 관련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재개발 신축공사 현장을 방문해 타워크레인 운용 관련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큰 피해를 호소하는 건 하도급사다. 한 철근콘크리트 업체 대표는 “타워크레인 운행 속도를 자동차로 따지면 시속 50㎞에서 20㎞로 느려졌다”며 “월례비를 매달 500만원씩 줄 때나, 지금이나 ‘건설현장의 수퍼갑(甲)’인 기사들한테 끌려다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이동식 크레인을 쓰는 현장도 많다. 14일 경기도 구리·수원시의 공사 현장에선 2~3대씩 투입됐다. 이동식 크레인 대여료는 하루에 150만원 수준이다.

시공사인 건설사도 속이 탄다. 공사가 지연돼 아파트 입주시기가 늦어지면 지체 보상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공사의 경우 하루당 계약금액의 1000분의 0.5 수준이다. 공사금액 2000억원 규모의 현장이면 하루당 1억원의 ‘지각비’를 무는 식이다. 대형 건설사 모임인 한국주택협회의 이동주 산업본부장은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에다 타워크레인 태업까지 겹쳐 공기가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입주 일정이 밀리면 건설사는 조합원 등 입주민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입주 예정자들도 걱정이다. 화물연대 파업, 공사비 인상 등 여파로 최근 입주가 늦어지는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내년 8월 예정이던 서울 서초구 신반포4지구(신반포메이플자이)의 입주는 2025년 4월로 늦춰졌다. 인천 연수구 ‘힐스테이트 송도 더 스카이’도 입주 시기를 내년 2월에서 5월로 미뤘다. 오는 6월 수원시의 한 신축 아파트에 입주 예정인 장모(37)씨는 “입주 예정 날짜에 맞춰 이삿짐 센터를 계약하고 전셋집을 빼도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런 피해를 막고자 대응 강도를 높이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4일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지능적 태업이 계속되면 운행기록장치 의무 장착을 강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어린이 통학 차량과 시내버스·화물차에 부착하는 운행기록장치를 타워크레인에 달아 운행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이날부터 오는 31일까지 전국 693개 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 불법행위를 특별점검한다. 강성주 대한전문건설협회 노동정책팀장은 “조종사 없이 가동되는 무인 타워크레인 설치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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