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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 손열음 “음반에서 불멸의 가치 느껴”

중앙일보

입력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피아노 소나타 18곡 전곡 연주 음반을 17일 발매하고 5, 6월 전국 투어를 한다. "모차르트를 연주를 녹음하고 나니 집에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사진 파이플랜즈.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피아노 소나타 18곡 전곡 연주 음반을 17일 발매하고 5, 6월 전국 투어를 한다. "모차르트를 연주를 녹음하고 나니 집에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사진 파이플랜즈.

“모차르트는 제게 집 같은 작곡가예요. 모국어라고 할까요. 늘 나의 중심에 있고 그래서 편안하게 느껴져요. 지난 몇 년간 낯선 곡들 연주하며 새로운 레퍼토리를 찾아다녔는데 모차르트를 녹음하고 나니 집에 돌아온 느낌입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자신의 아홉 번째 솔로 음반으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을 17일 전 세계에 발매한다. 6장으로 구성된 이번 음반은 나이브(Naive) 레이블에서 나왔다. 14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기자들과 만난 손열음은 모차르트 소나타 16번 K545 전 악장을 연주해 보였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돋보이는 원숙한 해석이었다. 곳곳에 창의적인 장식음과 루바토(자유로운 템포의 연주) 등 즉흥의 요소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2악장에서 중음역대가 탄탄했고, 감정이 바뀌며 먹먹해지는 부분에서 음의 농담을 흐리게 조절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밝고 명랑한 표정이 낭랑하게 살아났다.

이어진 문답에서 손열음은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아이러니가 있다며 “감정이 휙휙 바뀐다. 평소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바뀌지?’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많은 걸 내재해서 그런 것 같다. 경쾌하다가 깊어지고 기쁘다가 슬퍼지는, 단면적이지 않은 프리즘 같은 음악”이라며 “근데 나랑 잘 맞고 편하다. 똑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음악보다 흥미롭다. 늘 나를 놀라게 하고 기분 좋은 서프라이즈를 준다. 오늘도 새로운 놀라움을 발견하고 싶다는 느낌으로 연주했다”고 말했다.

전 18곡 6장에 담아 나이브 레이블서 전세계 발매 #"만화경 같이 다채로운 모차르트의 일기 같아" #5월 서울·원주 등, 6월 광주·대구 등에서 각각 전곡 연주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 녹음의 시작은 “우발적”이었다. 지난해 발매된 플루티스트 조성현과의 ‘슈만, 라이네케, 슈베르트’ 음반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할 때 음악당 공간을 당초 예정했던 것보다 이틀간 더 사용할 수 있었다.

“잘됐다고 생각하고 독주곡을 녹음하고 싶었는데 당장 가능한 곡이 모차르트밖에 없더군요. 1월 27일 모차르트 생일에 시작해 두 차례에 걸쳐 소나타 다섯 곡을 녹음하고 나니, 전곡을 녹음하고 싶어졌습니다.”

모차르트 소나타 18곡을 연주해 녹음한 느낌을 손열음은 “만화경 같다”고 표현했다.

“모차르트 음악이 이렇게까지 다양했나 하고 놀랐습니다. 모차르트가 새롭게 시도한 부분도 많이 발견했죠. 피아니스트로서 희열이 있었고 악기 발전 초창기의 피아노를 추적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손열음은 "모차르트의 음악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음악 같다"고 했다. 그만큼 인공의 냄새가 적다는 뜻이다. 사진 파이플랜즈

손열음은 "모차르트의 음악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음악 같다"고 했다. 그만큼 인공의 냄새가 적다는 뜻이다. 사진 파이플랜즈

“즉흥 음악처럼 연주하고 싶었다”는 손열음은 “모차르트 음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음악 같다. 고민해서 쓴 느낌이 없다. 정해진 플롯에 따른 음악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구간들을 연주하며 자유를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 전곡 음반을 발매한 나이브 레이블은 고음악과 동시대 음악은 물론 진취적인 연주를 선보여온 음반사다. 전곡 녹음을 끝내가던 손열음은 우연히 레이블 담당자를 소개받았다.

“담당자가 작년 6월 스위스 바젤에서 제 연주를 보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했어요. 당시 완료되지도 않았던 모차르트 전곡 음반을 나이브에서 제일 처음 내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이브는 음반 시장 트렌드와 상관없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독창성이 높은 레이블이라 평소 좋아했거든요.”

손열음에게 모차르트는 ‘최애 작곡가’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연주한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영상은 3월 현재 2100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2019년 BBC 프롬스에서도 모차르트를 연주했고, 2018년에는 영화 ‘아마데우스’ 연주를 담당했던 네빌 마리너경 지휘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음반을 발매했다.

“마리너 선생님은 열린 마음의 소유자셨어요. 모차르트 해석의 거장이라 수없이 연주하셨을 텐데도 제 의견을 많이 물으셨고 처음 설정했던 템포와 다른 걸 제가 제안하면 ‘네가 맞는 것 같다’며 적극 반영해주셨거든요. 강요하는 게 없었죠. 함께 녹음하며 저도 선생님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열음은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음반 발매를 기념해 전국투어를 한다. 5월 2·3·6·7일 서울·원주·서울·통영에서 한 차례, 6월 21·22·24·25일에는 광주·대구·고양·김해에서 또 한 차례, 모차르트 소나타 전 18곡 사이클을 두 차례 연주한다. 이 중 서울(5월 6일), 광주, 고양 공연은 이미 매진됐다.

“원래는 서울에서 전곡을 연주하려 했어요. 그러려면 한 공연장을 최소한 네 번은 대관해야 하는데 힘들었죠. 지역으로 찾아가면 어떨까 했어요. 제가 지역사람이기도 하고 서울에서만 공연이 열리는 게 서운했었죠. 음향이 좋은 곳들을 골랐어요. 통영은 녹음한 곳이고 원주는 제가 모차르트 소나타를 처음 쳤던 곳, 대구·광주·김해는 그동안 좋은 느낌을 받았죠. 광주금호아트홀은 특별한 추억이 있어요. 어린 시절 무대를 제공해준 금호문화재단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손열음은 "앞으로 모차르트 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도 전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파이플랜즈

손열음은 "앞으로 모차르트 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도 전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파이플랜즈

손열음은 2018년 평창대관령음악제의 3대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스토리텔링을 도입해 프로그램을 짜고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내 인생을 확장해준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로 키우길 바랐는데 여건상 한국에 있는 음악가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더 이상 열심히 할 수는 없을 정도 최선을 다했기에 지난해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평창에서 일하며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는 손열음은 “내가 물러 터지고 별로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근성과 끈기가 있더라. 욕심도 생겨 열심히 했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니 폐 끼치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다”며 “내 한계도 새롭게 발견했다. 기획자 마인드란 게 특별히 없다. 요즘 연주자라면 다들 갖고 있는 정도다. 현재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인 고잉홈프로젝트를 다른 연주가들과 함께 돕고 있지만 내가 그리 능동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열심히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손열음은 앞으로 모차르트 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꼭 녹음하고 싶다고 했다.
 “모차르트의 소나타가 일기장이나 실험판이라면 협주곡은 종교음악·오페라가 녹아있는 완성된 장르죠.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협주곡 전곡 연주를 먼저 했을 거예요. 마리너 선생님도 ‘30대에 협주곡 녹음 시작하면 50대에 끝낼 수 있다’고 권하셨거든요. 10년을 바라보고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꼭 내고 싶습니다. 하나의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만 고집하지 않아요. 다양하게 전곡을 꾸밀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로나 기간 손열음은 예정됐던 73개 연주회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다시 바빠지기 시작한 건 재작년 9월부터다. 이번 주 네덜란드, 다음 주 스페인 등 5월 한국 투어 전까지 매주 유럽에서 연주가 잡혀있다고 했다.

“피아노를 더 잘 치고 싶어요. 항상 아쉽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제가 음반광이라 이상이 높아요.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내지?’ 하며 흠모하는 연주, 경이로운 연주가 많죠. 물론 제 연주 중에도 좋아하는 구간들이 있긴 해요. 연주가란 직업은 살아있을 때 인정받는 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세상에 없을 때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음반을 많이 녹음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어릴 때는 음반 녹음이 부담스럽고 음반 속 연주가 죽은 음악 같았는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제가 죽어도 남는, 불멸의 가치를 음반에서 느낍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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