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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美협조 아래 북과 만나면 좋겠다" 반세기 北전문가 갈루치

중앙일보

입력

긴급진단-북핵 위협 속 한반도의 길을 묻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위태롭게 돌아가면서 한국의 독자 핵 개발론도 어느 때보다 거세다. 중앙일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 안보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 시리즈를 미주중앙일보와 함께 연재한다. 핵무기 권위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인터뷰를 필두로 미국과 유럽의 정책담당자 및 정보 전문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남북 및 북·미 간 대치 상황의 궤적과 방향성, 그리고 가능한 선택지들을 짚어본다. 네 번째 순서는 1994년 ‘북ㆍ미 제네바 합의’를 끌어낸 경험이 있는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와의 인터뷰다.

[한반도의 길④] 로버트 갈루치 박사 인터뷰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

북핵 대사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갈루치 박사는 미국 조지타운대 에드먼드 월시 외교대학 학장을 지냈고, 국무부와 UN 등에서 20년 동안 공직자로 활약했다. 1992~94년 국무부 정치 군사담당 차관을 맡았으며, 이후 북핵 대사와 제네바 합의의 미국 측 협상 총 책임자로 일했다. 최근 50여 년 동안 북·미, 남북, 북핵 관련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연구한 전문가다. 미주중앙일보는 갈루치 박사와 이메일과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담대한 구상’을 선언했던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독자 전술핵을 언급했다. 
“흥미롭게 보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 제안한 내용에 대해서 아직 받아들일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윤석열 정부가 북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매우 보수적인 배경과 지지층을 갖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조건에도 윤 대통령이 미국과의 협조 아래 북한과 만나면 좋겠다.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를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기도록 지원하고 응원하는 것인데, 미국이 북한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조만간 이 상황이 개선된다면 윤 대통령이 나서서 자신의 제안 내용을 북한이 돌아볼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막힌 미·중 관계가 현재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닌가.
“미·중 관계가 이렇게 악화한 것은 최근 들어 전례가 없다. 예전에 북한에 대한 압박용으로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방문하고 협상도 많이 했지만 조만간 그렇게 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여전히 중국과 연락하며 북·중 관계를 주시해야 한다.”
북과 대화 및 외교 채널 가동 전망은.
“미국이 한국·일본과 협의를 거쳐 먼저 북한에 뭔가를 제안하는 것이 첫발이라고 본다. 예전에 협상 상대였던 북한 관리들은 항상 ‘미국이 강대국인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먼저 손을 내밀어야 맞지 않나’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맞다. 미국은 한국과는 협의, 중국에는 고지를 통해 북한과 고위 대표급 회담을 제안하고 북에 정상적인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미국이 취할 기본적인 조치들에 관해 설명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북한에 정치, 경제, 안보 측면에서 보통의 외교 관계를 맺자고 제안해야 한다.”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의 적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설득력이 있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의 조건에서 보면 가까운 미래에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협정을 위한 협정이 아닌, 더 큰 틀의 정치적 협의가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북한의 핵무기 현황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을 통해 핵무기 발사가 가능한 수준일 수도 있다. 미국을 향해 발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결코 미국의 군사력과 화력에 맞설 수 있는 수준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누구라도 미국과 동맹국들을 향한 핵 공격을 한다면 그 정권은 지구 위에서 사라질 것이다.”
전술핵 자체 무장, 핵 계획 그룹(NPG), 듀얼 키 등 북핵과 관련된 여러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확장 억제력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는 듯하다.
“일단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은 미국의 여러 도시를 불안하게 했다. 한국을 포함, 동북아 동맹국들도 비슷한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 제공한다고 확신했던 억지력에 대한 믿음이 다소 약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예전 유럽의 경우에도 유사한 설명과 설득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동맹국들을 위한 미국의 확장 억제력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미국의 핵 능력은 변함없이 동맹들을 지킬 것이다. 한국의 전술핵 무장은 결코 미국의 수준에 필적하지 못하며, 미국의 확장 억제력을 대체하기 위한 한국의 노력은 결코 한국의 지위를 향상하지 못한다. 나아가 그런 억제력을 독립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남과 북이 발사 차량을 출동시킬 경우에 사고 또는 허가받지 않은 발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이 역시 한국의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다.”
북한과 수많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들이 핵무기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30년 경험에 근거해보자면 그들은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받고 외부 국가들과 평상적인 외교 관계를 원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지속해서 공조를 해왔다는 점, 그리고 미국이 다른 국가의 정권을 물리적으로 교체하기도 했다는 점은 그들에겐 큰 위기로 인식됐다. 그래서 안보를 위해 핵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과 다시 일할지 모르지만, 북한이 경제·정치·외교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는 일반 국가로 남고자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서명장에서 당시 로버트 갈루치 미국 북핵 특사(왼쪽)와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2016년 사망)가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갈루치 교수는 당시 합의에 이어 북미관계 정상화를 기대했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1994년 제네바 합의 서명장에서 당시 로버트 갈루치 미국 북핵 특사(왼쪽)와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2016년 사망)가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갈루치 교수는 당시 합의에 이어 북미관계 정상화를 기대했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미국은 주요 북핵 시설에 대해 국지적·전술적 공격을 한때 고려했었다. 아직도 가능한 선택지인가.
“공격하려면 먼저 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 처리 주요 시설의 위치와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시설이 지하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실제로 폭파 효과가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일부는 미국이 알고 있다. 그래서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아직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럼 미국이 원한다면 공격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봐야 하냐. 후폭풍은.
“그렇다. 미국의 국방력은 정확하게 원하는 지점을 공격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먼저 이런 상황이 되려면 북한의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에 핵탄두 장착 기술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핵탄두의 손상 없이 미국의 도시까지 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면 미국의 공습이 가까워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북한의 능력은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북의 능력과 미국의 조건은 풀어야 할 난제다. 하지만 이 길은 우리 모두 가고 싶지 않은 길임이 분명하다.”
1994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로버트 갈루치 당시 미국 차관보(왼쪽)와 악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4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로버트 갈루치 당시 미국 차관보(왼쪽)와 악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30년 동안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라고 했다. 왜 그런가.
“미국은 오직 북한이 핵무기를 손에 쥐는 것을 막고, 쥐고 있다면 포기하도록 하는 데 집중해왔다. 이런 기조 때문에 미국의 외교 정책은 5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성공한 적이 없다.”
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포함하지 않은 것을 두고 아쉬움을 표한 적이 있다. 왜인가.
“북한과의 평상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핵무기를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국제사회 기준에 준하는 인권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제네바 합의는 군사 안보와 에너지에 집중했으며 북한은 물론 참가자 모두가 이후 북미의 정상적인 외교 관계 체결을 기대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인권 정책의 개선 없이는 외교 관계는 불가능했으며 지금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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