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식당엔 어르신 가득 "방학인 줄"…지방대 신입생 멸종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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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학기 개학 후 첫 번째 월요일이었던 지난 6일 오후 2시쯤 경북의 4년제 사립대학인 A대학 열람실이 불 꺼진 채 텅 비어 있었다. 이후연 기자

올해 1학기 개학 후 첫 번째 월요일이었던 지난 6일 오후 2시쯤 경북의 4년제 사립대학인 A대학 열람실이 불 꺼진 채 텅 비어 있었다. 이후연 기자

“개강했어요? 아직 방학인 줄 알았네….”

지난 6일 경북의 한 4년제 사립대에서 만난 외부 용역업체 직원은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못 봤다”며 개강한 사실을 헷갈렸다. 개강 후 첫 월요일, 캠퍼스는 텅 비었고 강의실은 어두컴컴했다. 캠퍼스를 산책하던 직원은 “올해 신입생이 거의 안 들어왔고 입학식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정의 소나무들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는데, 마치 우리 대학 모습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학은 올해 대입 정시에서 633명을 모집했는데 74명이 지원했다. 모집학과 20개 중 11개의 정시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440명을 추가 모집했는데 26명이 지원했다.

경북의 한 4년제 사립대 강의실 안에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가 비치돼 있는 모습. 이후연 기자

경북의 한 4년제 사립대 강의실 안에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가 비치돼 있는 모습. 이후연 기자

이 대학 한 강의실에 가봤더니 ‘제작연도 2003년’이라고 표시된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복도 형광등은 4~5개 걸러 하나씩 빠져 있고 이름표 없는 교수 연구실도 층마다 보였다. 한 교수는 “교수들도 10년 전보다 절반 이상이 떠났다”며 “교수들끼리 ‘박물관 갈 필요가 뭐 있나. 여기가 중세시대’라는 씁쓸한 농담을 한다”고 했다.

텅 빈 학생식당…“동아리 후배 모집 어려워”

지난 10일 방문한 전북의 한 4년제 사립대에도 개강 분위기는 없었다. 오후 12시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학생들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11시 50분까지 텅 비다시피 한 학생식당을 채운 건 학내에서 행사를 마치고 온 어르신들이었다. 점심을 먹던 한 학생은 “금요일이라 평소보다 애들이 없긴 하지만, 올해는 신입생이 많이 없어서인지 새 학기 느낌이 별로 안 난다”고 했다. 정시 모집정원이 700여명인 이 학교는 올해 570명을 추가 모집했다.

23학번이 입학하는 올해부터는 코로나19가 사실상 끝나고 선배·동기들로 캠퍼스가 북적북적할 것이라는 기대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전북의 한 대학생은 “동아리 신입생을 모집하는 게 너무 어렵다. 신입생 자체가 없고, 있는 신입생도 학교에 잘 안 나온다”고 했다. 학생회와 동아리방이 모여 있는 학생회관은 일부 종교 관련 동아리방을 제외하곤 불 꺼진 채 문이 잠겨 있었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50분 전북의 한 사립대 학생식당 한 쪽이 텅 비어 있는 모습. 이날 점심을 먹는 학생은 10여명에 불과했다. 이후연 기자

지난 10일 오전 11시 50분 전북의 한 사립대 학생식당 한 쪽이 텅 비어 있는 모습. 이날 점심을 먹는 학생은 10여명에 불과했다. 이후연 기자

이 대학 근처의 한 음식점 주인은 “코로나 이전에 했던 개강파티, 신입생 환영회 같은 행사가 좀 있을까 했는데, 괜한 기대였다”고 말했다. 근처에 있던 음식점·카페 등은 지난 3년 사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더니 이젠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학 직원은 “학생 수가 계속 줄다 보니 식당들도 다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중도 포기 신입생의 60%가 지방대생

개강을 했지만, 6일 오후 2시 경북의 한 사립대 공학관의 2층 전체가 불 꺼진 채 텅 비어 있었다. 이후연 기자

개강을 했지만, 6일 오후 2시 경북의 한 사립대 공학관의 2층 전체가 불 꺼진 채 텅 비어 있었다. 이후연 기자

서울의 캠퍼스엔 코로나19의 공포가 서서히 걷히고 봄기운이 피어나고 있지만, 지방대의 캠퍼스는 아직 겨울이었다.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현상이 이어지면서 지방대의 신입생 감소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서다. 올해 정시모집 결과 수험생이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은 학과가 있는 대학이 14곳이었는데, 모두 지방대였다. 2020년에 3개였던 것이 3년 만에 약 5배가 됐다. 신입생이 충원되지 않아 추가모집 마지막 날까지 원서 접수를 받은 대학 60개 중 48개가 지방대였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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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기준 4년제 대학 189개(분교 포함, 캠퍼스 제외) 중 신입생 충원율이 100% 넘는 대학은 45개에 불과했다. 충원율 80% 미만인 대학은 27개로, 소규모 종교대학을 제외하면 모두 지방대였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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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는 한 명이라도 더 뽑으려고 하지만,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수도권에 더 가까운 대학으로 ‘갈아타기’하느라 바쁘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21년 4년제 지방대 중도 포기 신입생은 1만5540명으로, 전체 신입생 중도 포기 학생의 60.6%에 달한다. 1년 전보다 2000명 이상 증가했고, 비율도 3%포인트가량 늘었다. 경북 사립대의 한 2학년 학생은 “개학하고 보니 후배도 없고, 반수 해서 다른 학교로 떠난 동기들이 꽤 많아 씁쓸하긴 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이 올해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크게 꺾이는 해이기 때문이다. 올해 대학 입학 연령인 2004년생이 47만7000명인데, 2005년생은 43만8700명으로 4만명가량 줄었다. 교육부·통계청에 따르면 내년 대입 인구는 37만명으로 추산돼 올해(42만8000명)보다 5만명가량 줄어든다. 2000년 대입 인원은 82만7000명이었다. 지방대 신입생 충원율은 79%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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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대학신입생=20세 한국인’ 공식 깨진다

지방대의 대표적인 자구책은 외국인 유학생과 만학도다. 전북의 대학은 특수교육 분야 전공을 희망하는 중국·베트남 유학생을 유치해 교육하고 있다. 대학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서 배우고 가서 그 나라의 교수가 된 뒤 학생들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한국 교육이 아시아 쪽에서 경쟁력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유학생을 유치하도록 정부도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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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이상 입학생을 대상으로 1년 등록금을 면제하는 등 장학금 혜택을 내걸고 만학도를 유치하는 지방대도 늘었다. 만학도 신입생 비율은 2021년 8435명으로 전체 신입생의 2.6%로 신입생 연령 통계 조사가 시작(2006년)된 이후 최대다. 한 지방 사립대 교수는 “뒤늦게나마 꼭 배우고 싶은 학문을 선택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학구열도 높고, 의지도 강하다”고 했다. 다른 지방 사립대의 교수는 “앞으로 지방대에서는 ‘신입생=20세, 한국인’이라는 공식이 깨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회생 불가능한 지방대엔 퇴로를 열어주고 기회가 있는 지방대엔 새로운 변화가 가능하도록 도전 기회를 제공해주는 게 교육 당국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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