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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과 후크 선장은 하나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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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분명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읽은 적이 없는 책들이 있다. 필자가 운영하는 서점 ‘채그로’ 토요 아침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피터팬』이 그랬다. 아동문학인 줄 알았는데 어른들을 위한 심리소설에 가까웠다.

만화나 영화 속 후크 선장은 악의 화신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만난 그는 꽃과 음악을 사랑하는 신사였다. 잘생긴 외모에 최고 명문학교 출신이며 전통에 충실했다. 악한이라기보다 올바른 품성에 대한 강박을 가진 햄릿형 인간이었다. 오히려 피터팬은 기존의 가치관을 우습게 아는 폭력적인 반항아였다.

이야기 속 후크 선장과 피터팬은 저자 제임스 매튜 배리(1860~1937) 내면의 두 자아일지 모른다. 누구나 자기 안에 여러 개의 자아가 있고, 그 특성과 서열은 인생의 시기와 상황에 따라 바뀐다. “모든 아이는 다 어른이 된다, 한 명만 빼고.” 소설의 첫 문장이다. 아마도 그 한 명이 바로 우리 내면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아닐까.

후크 선장

후크 선장

작가가 여섯 살 때 열네 살 된 형이 죽었다. 그 후 작가는 죽은 형의 대체로 살며 어머니와 역전된 양육 관계를 이어갔다. 어머니로부터 돌봄을 받고 싶었던 작가의 강렬한 바람이 웬디에게 전해졌다. 웬디는 피터 팬의 엄마가 되어 엄마 없는 아이들의 나라 ‘네버랜드’로 함께 날아간다.

또한 작가는 자신의 사회적 페르소나이자 중요한 자아인 ‘신사로서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제멋대로의 피터 팬이 후크 선장을 죽이도록 허락한다. 후크 선장이 피터 팬을 증오하며 결국 한 명이 죽어야 끝나는 대결을 펼친 이유는 피터팬의 건방진 태도 때문이었다. 착한 사람 증후군 사람들이 갖는 ‘건방짐’에 대한 열등감과 로망이라니!

우리는 매일 내 속의 여러 자아가 충돌하며 살아간다. 때로 내 안의 나를 스스로 죽이기까지 미워한다. 그 자아 또한 나의 소중한 자산임을 깨닫기까지 우린 얼마나 오래 절망하는가. 자기다움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해피엔딩을 소망해본다.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