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SVB’ 이어 또 위기설…퍼스트리퍼블릭 파산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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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과 IT 기업의 돈줄 역할을 해온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에 이어 뉴욕주의 시그니처은행도 파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음 은행은 어디가 될지에 전 세계 금융업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2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주는 대표적 암호화폐 은행인 시그니처은행을 폐쇄하고 자산몰수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주 폐쇄한 실버게이트처럼 시그니처은행도 최근 암호화폐 시장 불황으로 자금난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투자자들은 다음으로 파산 가능성이 높은 은행으로 SVB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우려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중소 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2126억 달러(약 279조원)에 총예금 1764억 달러(약 231조원)로, SVB(총자산 2090억 달러 및 총예금 1754억 달러)보다 약간 더 큰 규모다. 이 때문에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파산할 경우 SVB보다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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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위기설이 나오자 미 정부는 자금 긴급수혈에 나서며 진화를 시도했다. WSJ에 따르면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이날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JP모건체이스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가용 유동성을 700억 달러(약 91조원)로 늘렸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이날 성명을 통해 “당국이 인정하는 유동성과 자본 상태가 충분하다”고 했다. 이 은행은 이번에 확보한 유동성 외에도 Fed가 조성하기로 한 새로운 기금(BTFP)의 지원도 받을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SVB와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 은행은 지난 10일 주가가 15% 정도 폭락하는 등 지난주에만 약 30% 급락했다. 부유한 고객들에게 대규모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제공하는 등 공격적 영업을 해오다 Fed의 금리 인상 드라이브로 모기지 금리가 치솟으며 영업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WSJ에 따르면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예금 가운데 예금 보호가 되지 않는 25만 달러(약 3억2600만원) 초과 금액은 1400억 달러(약 182조원) 이상이다.

미 정부는 조기 진화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미 재무부와 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12일 SVB에 맡긴 고객 예금을 보험 한도와 무관하게 전액 보증하기로 했다.

바이든, SVB 사태 진화 나서…‘3월 빅스텝’ 전망 0% 됐다

미국 뉴욕주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시그니처은행을 폐쇄하고 자산몰수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이날 뉴욕시에 있는 시그니처은행 본사에서 한 근로자가 커피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뉴욕주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시그니처은행을 폐쇄하고 자산몰수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이날 뉴욕시에 있는 시그니처은행 본사에서 한 근로자가 커피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사태의 조기 진화에 직접 뛰어들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여러분은 은행 시스템이 안전하다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여러분의 예금은 필요할 때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 CNN방송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오커스(AUKUS, 미·영·호주) 3자 회담 참석차 샌디에이고로 떠나기 전 SVB 파산 사태와 관련한 연설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문제가 된) 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는 미 전국의 중소기업은 직원에게 급여를 주고 청구서를 지불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함께 “납세자의 돈은 구제 금융에 쓰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바이든

이번 결정에 따라 SVB 예금주는 13일부터 예금 전액에 접근할 수 있다. 금융기관 자금 대출의 구체적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Fed는 “수조 달러의 잠재적 수요를 감당할 만큼 충분히 큰 규모”라고 했다. 미 재무부는 SVB 사태 여파로 12일 폐쇄된 시그니처은행에 대해서도 모든 예금주를 대상으로 비슷한 대책을 마련했다. 뉴욕주 규제당국금융서비스부(DFS)는 이날 예치금 885억9000만 달러(약 117조원) 규모의 시그니처은행을 인수하고 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

이번 사태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상황으로 번질 거란 우려가 나왔지만, 13일 세계시장에서 걱정했던 ‘블랙 먼데이(월요일 증시 폭락)’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전 거래일보다 각각 0.67%, 0.04% 오른 채 거래를 마쳤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22.4원 오른 1301.8원에 마감했다. 미 당국의 발 빠른 조처가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렸고, 오는 20~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가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되면서다. 하지만 유럽 증시는 13일(현지시간) 장 초반 일제히 급락세를 보였다. 영국 FTSE 지수는 이날 (오전 11시30분 기준) 전 거래일 종가보다 2.10% 내린 7586.01을 기록했다. 같은 시간 프랑스의 CAC 40 지수는 2.51%, 독일의 DAX 지수는 2.57% 내렸다.

실제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Fed워치에 따르면 3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전망한 전문가 비율은 지난 11일 40.2%였지만, 13일 19시 기준으로는 0%로 급락했다. 반면에 전에는 0%였던 기준금리 동결 전망은 41.7%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다”며 “국내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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