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정고무신’ 작가 죽음 부른 저작권 불공정 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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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극장판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즐거운 나의 집'의 한 장면. 지난해 개봉 당시 원작자인 이우영 작가는 캐릭터 대행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2차 저작물을 만들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대행사와 저작권 분쟁 중이었던 이 작가는 지난 1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뉴스1]

극장판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즐거운 나의 집'의 한 장면. 지난해 개봉 당시 원작자인 이우영 작가는 캐릭터 대행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2차 저작물을 만들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대행사와 저작권 분쟁 중이었던 이 작가는 지난 1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뉴스1]

 대행사에 권리 넘긴 뒤 저작권 침해로 피소

창작자 공정한 보상이 문화산업 성장 토대

만화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지난 1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작가의 안타까운 사연도 사연이지만 한국 문화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저작권 정비는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사안으로 부상했다. 이 작가는 15년 전 맺은 불공정 계약 때문에 원작자인데도 저작권 침해로 고소당한 처지였다. 1992년부터 만화 잡지에 연재된 ‘검정고무신’은 이 작가가 스무 살에 내놓은 데뷔작이다.

문제의 계약은 2008년 체결됐다. ‘검정고무신’에 대한 모든 사업의 권리를 대행사에 위임하는 계약이었다. 이 작가의 생전 인터뷰에 따르면, 2006년 잡지 연재가 중단된 뒤 새 연재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캐릭터 가치를 키워주겠다는 대행사 대표의 말에 끌려 계약을 맺었다. 저작권 등록도 이때 했다. 대행사 대표는 자신의 저작권 지분을 이 작가(27%)보다 많은 36%로 책정했고, 2011년엔 글 작가의 지분(27%)까지 사들여 53%의 권리를 갖게 된다. 이는 작가의 작품활동까지 방해하는 굴레가 됐다. 이 작가는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자신의 다른 작품에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2019년 고소당했다. “손발이 다 잘린 느낌”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던 이 작가는 1심 판결이 나기도 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창작자에 대한 공정한 보상 문제는 『구름빵』 백희나 작가의 사례에서도 불거졌었다. 백 작가는 2004년 『구름빵』 출간 당시 원고료 1850만원을 받고 저작권 등 모든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하는 매절 계약을 했다. 이후 『구름빵』은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캐릭터 상품 등으로 2차 가공돼 4000억원대의 부가가치를 올렸지만 백 작가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후 저작권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벌였으나 2020년 최종 패소했다.

문화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권익 보호와 공정한 보상이 선제조건이다. 정당한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작가의 창작 열의는 꺾이게 마련이다. 이 작가도 2020년 창작 포기를 선언했고, 백 작가는 『구름빵』 이후 무려 6년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계약 관행에 어둡고 협상력이 떨어지는 창작자들은 노하우가 풍부한 업체와의 계약에서 불리한 조건을 간과할 가능성이 크다. 신인 작가들이 데뷔 자체에 의미를 두고 부당한 조건을 감수하는 경우도 흔하다. 계약서의 ‘기밀 유지’ 조항이 불공정에 대한 공론화를 막기도 한다.

창작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불공정 계약에 대한 체계적인 실태 조사와 적극적인 표준계약서 보급 등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국회에는 저작물의 수익이 계약 당시보다 현저히 많은 경우 저작자가 추가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저작권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더 이상 ‘검정고무신’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이 작가의 영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