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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팔았는데…‘강남 쪽방’ 이젠 찬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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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에는 강남권에서 보기 힘든 10평형대 아파트가 있다. 총 5563가구 중 15.6%(868가구)가 12평형 27㎡(이하 전용면적)다. 2021년 9월 12억7500만원에 팔리며 2005년 분양 당시 가격(1억9000만 원대)의 6배가 됐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들어 거래가 끊겼고, 집값도 내려갔다. 요즘 매도 호가는 타입별로 8억~11억원으로, 1년 만에 2억원가량 내렸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20~30평대가 반등하는 것과 달리 집값이 약보합 수준인데도 찾는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때 서울 강남권에서 ‘없어서 못 팔던’ 초소형 아파트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초소형 아파트는 60㎡ 이하인 소형보다 작은, 40㎡ 이하 아파트를 말한다. 대개 방 한두 개와 욕실 한 개로 이뤄진다. 이 주택형은 2000년대 초 서울시의 소형평형 의무비율(재개발·재건축은 40㎡ 이하 8%) 규제 때문에 억지로 생겨났다. 당시 ‘강남 쪽방’ 취급을 받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1인 가구 증가로 몸값이 뛰며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됐다. 그러나 최근엔 수요가 줄면서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2021년 11월 13억5000만원에 팔린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39㎡는 지난달 9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1년여 만에 4억원 넘게 내린 것이다. 강남구 역삼동 ‘역삼아이파크’ 28㎡도 2021년 7월 9억원에 팔렸지만, 현재 호가는 7억2000만원 선이다. 지난해 9월 8억2000만원에 계약된 뒤 6개월간 거래가 실종됐다.

분양시장에서도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다. 송파구와 붙어 있는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은 지난달 예비당첨자 계약 후에도 일반분양 4786가구 중 899가구가 미계약됐다. 이 중 초소형인 29~39㎡가 71%(640가구)다. 업계 관계자는 “청약통장을 쓸 필요 없는 무순위 청약에 4만 명 넘게 몰리긴 했지만, 중소형 평형보다 수요 자체가 덜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초소형 아파트의 인기가 줄어든 이유는 우선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 탓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2월 말부터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과 송파구 잠실동 등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대지면적이 6㎡ 넘는 집을 사려면 구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거주자가 아닌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자’는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삼성·잠실 일대 중개업소들이 “10평대 아파트는 임대 수요가 많은데도 투자자가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다.

임대 수익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점도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역삼아이파크’ 28㎡의 임대료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50만원이다. 현재 호가(7억2000만원)를 기준으로 하면 연 수익률이 2.6%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연 4% 전후)보다 낮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월세를 주자니 수익률이 안 나오고, 갭 투자자 입장에선 전셋값이 하락하는 상황이라 투자 비용이 크다”고 말했다.

강남권 초소형 아파트가 다시 인기를 끌지는 미지수다. 투자 상품 성격이 강해 주택시장이 살아나거나 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수요가 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공급이 느는 것도 부담이다. 2025년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에서만 초소형 1160가구(전용 29~39㎡)가 입주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임대 수익은 물론 시세차익 기대가 예전만큼 크지 않아 단기 집값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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