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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뺨 맞고 중국에 분풀이, 하지만 8강은 날아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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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한국 야구 대표팀이 WBC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도쿄 참사’란 표현으론 부족할 정도다.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에 취해 방향을 잃고 헤맨 사이 국제 경쟁력은 떨어졌다.

한국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라운드(8강) 진출에 실패했다. 13일 호주가 체코를 8-3으로 꺾고, 일본(4승)에 이어 B조 2위(3승 1패)를 확정했다. 한국은 이어 열린 중국전에서 22-2로 5회 콜드게임 승을 거뒀지만, 3위(2승 2패)에 머물렀다. 2006년 4강, 2009년 준우승 신화를 썼던 한국은 결국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중국과의 경기에서 뒤늦게 화풀이를 하며 역대 최다 득점과 최다 점수차 기록을 세웠지만, 예선 탈락으로 빛이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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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편성은 좋은 편이었다. 숙적 일본을 제외하면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호주·체코·중국과 같은 조에 묶였다. 2위까지 2라운드에 진출하기 때문에 8강행 전망은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첫 경기에서 호주에 발목을 잡혔고, 일본엔 2009 WBC 1라운드(2-14 콜드게임패) 이후 가장 큰 점수 차(4-13)로 졌다.

지난 2000년대 초반에도 한국 야구는 위기를 맞았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야구 인기는 줄곧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이 시기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러다 2006년과 2009년 WBC의 선전과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힘입어 야구팬들이 늘어났다. 프로야구 800만 관중 시대가 열렸고, 20년 넘게 유지되던 8개 구단 체제를 뛰어넘어 10개 구단 시대가 열렸다. 야구 콘텐트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TV중계권료는 1000억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외형은 성장했지만, 정작 선수들의 실력은 발전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대표팀 투수들은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지지 못했다. 크지 않은 체격인데도 시속 150㎞대의 강속구를 정교하게 던지는 일본의 야마모토 요시노부(1m78㎝, 80㎏)나 이마나가 쇼타(1m78㎝, 86㎏)와는 대조적이었다. 타자들은 큰 스윙으로 일관하다 삼진으로 물러났다.

프로 지도자들은 몇 년 전부터 “어린 선수들의 기본기가 너무 부족하다. 예전보다 체격은 크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서 힘은 좋아졌지만, 제구력이나 수비력은 후퇴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힘에만 의존하는 투구를 하다 보니 제구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WBC 대표팀 감독을 지낸 김인식 감독은 “일본전에 투수를 10명이나 썼다. 제구력이 너무 안 좋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인권 NC 다이노스 감독은 “아무래도 첫 경기에서 지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그러나 이번 결과는 선수들 뿐만 아니라 유니폼을 입은 야구인 모두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투지도 실종됐다. 팔에 담이 든 채 155구를 던진 구대성이나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수비수와 부딪혀 헬멧이 부서졌던 이용규의 모습은 빛바랜 추억이 됐다. 세리머니를 하다 아웃이 되고, 주루와 수비 실수를 범하는 경우도 잦았다.

야구계에선 아마추어 야구 때부터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용택 해설위원은 “미국이나 일본과 달린 한국에선 고교생이 나무 방망이를 쓴다. 그러면서 투수들의 제구력이 크게 떨어졌다. 알루미늄 배트를 쓰면 투수가 장타를 맞지 않기 위해 컨트롤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표팀 훈련 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대표팀은 2월 중순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첫 소집 훈련을 했다. 훈련을 마친 뒤 한국을 거쳐 일본에 입성했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KT 위즈를 비롯한 상당수 구단이 미국에 캠프를 꾸렸기 때문에 대표팀 캠프도 미국에 차린 것이다.

대다수 선수들은 1월부터 평소보다 이르게 개인훈련을 시작했지만, 잦은 이동과 빡빡한 일정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마무리 고우석은 등 근육 통증 때문에 결국 한 번도 던지지 못했다. 다른 투수들도 컨디션이 저조했다. A구단 관계자는 “미국에서 훈련을 하는 것까진 이해하지만, 굳이 왜 한국을 찍고 일본으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선수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강철 감독은 2021시즌 KT 위즈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국제 대회에서 팀을 이끈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돌발 상황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가용 자원마저 줄어 어려움을 겪었다. 전임 감독 아래 매년 평가전을 가지면서, 선수층을 다지고 경험을 쌓은 일본과는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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