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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SVB사태 진화에…전에 없던 기준금리 '동결' 전망까지 등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은행 파산인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놓고 미국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미국 금융당국은 시장이 열리기 전날 일요일인 12일(현지시간) 이례적으로 긴급회동을 갖고, 예금액 전체를 보전하고 은행권에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는 대응책을 내놨다. SVB 사태가 금융시스템 전체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예금 전액 보전, 은행 긴급 대출 실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폐쇄를 선언한 실리콘밸리뱅크(SVB) 앞에 11일 행인들이 다가가 은행 로비문에 게시된 메시지를 읽고 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산하 예금보험국립은행을 통해 이 은행 자산 매각에 나선다. [UPI]  Visitors read a message iposted on the lobby door of the Silicon Valley Bank in Santa Clara, California on Saturday, March 11, 2023. On March 10, the FDIC took over the bank after it collapsed. [UPI]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폐쇄를 선언한 실리콘밸리뱅크(SVB) 앞에 11일 행인들이 다가가 은행 로비문에 게시된 메시지를 읽고 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산하 예금보험국립은행을 통해 이 은행 자산 매각에 나선다. [UPI] Visitors read a message iposted on the lobby door of the Silicon Valley Bank in Santa Clara, California on Saturday, March 11, 2023. On March 10, the FDIC took over the bank after it collapsed. [UPI]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 같은 대책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원래 미국 FDIC는 최대 25만 달러(약 3억2500만원)까지 예금을 보장해 준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는 오는 13일(현지시간)부터 SVB에 돈을 맡긴 예금주의 보증 한도를 무제한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SVB를 매각해 인출 예금액을 우선 갚고, 모자란 돈은 FDIC를 통해 보전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국인과 미국 기업은 필요할 때 예금을 찾을 수 있다는 신뢰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 금융당국은 SVB 등에 투자한 주주나 담보 없이 돈을 빌린 채권자에 대해서는 추가 지원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재무부는 “은행이 구제받는 것이 아니라, 예금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납세자는 어떤 손실도 부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과감한 지원책이 나온 건 이번 사태가 불안 심리를 자극해 다른 은행의 연쇄 ‘뱅크런(대규모 은행 예금 인출)’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SVB는 전체 예금의 95% 정도가 계좌당 25만 달러를 초과한다. 보증 한도를 넘는 예금주가 많다 보니, 돈을 못 찾을 수 있다는 우려에 예금 인출 사태가 다른 은행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뱅크런 확산 차단 목적”   

실제 미국 금융당국 대응책이 나오기 전에 또 다른 미국 중소 은행 파산 사례도 나왔다. 뉴욕주(州)는 대표적 암호화폐 은행인 시그니처 은행을 폐쇄하고 자산몰수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주 폐쇄한 실버게이트와 마찬가지로 시그니처 은행도 최근 암호화폐 시장 불황에 자금난을 겪었다.

주가도 1주일 새 약 35% 급락하면서 제2의 SVB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구체적 폐쇄 이유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중소 은행의 연쇄 부실화를 차단하기 위해 선제적 조처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1주일 새 문 닫은 미국은행은 3개로 늘었다. 미국 금융당국은 시그니처 은행에 대해서도 SVB와 동일한 예금 전액 보증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날 성명서에는 Fed가 은행권에 돈을 보다 쉽게 빌려주는 ‘은행 자금 지원 프로그램(BTFP)’도 담겼다. 미국 은행은 앞으로 1년간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같이 정부가 보증한 채권을 담보로 Fed에 돈을 빌릴 수 있다. 이때 채권 담보가치는 시장가가 아닌 발행 당시의 액면가를 기준으로 한다. 당장 자금이 부족한 은행이 손실을 보고 채권을 팔지 말고, Fed에 돈을 빌려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라는 의도다. SVB 사태는 대규모 예금 인출액을 갚기 위해 급락한 채권을 손실을 보고 팔면서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정부의 조치에 대해 “SVB 파산 후 불과 며칠 만에 은행권에 퍼진 공포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상황으로 번질 거란 우려가 나왔지만, 13일 세계 금융시장에서 걱정했던 ‘블랙 먼데이(월요일 증시 폭락)’ 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지난 10일·2394.59)보다 16.01포인트(0.67%) 오른 2410.60에,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780.60)보다 0.29포인트(0.04%) 상승한 788.89에 거래를 마쳤다. 서울 외환 시장에서 달러 당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1342.2원)보다 22.4원 오른 1301.8원에 마감했다.(환율은 하락)

시장은 무덤덤…빅스텝 가능성 '제로'로

미국 금융당국의 발 빠른 조처가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렸고, 오는 20~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가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골드만삭스는 “SVB 사태가 미국 기준금리 인상 경로에 미치는 불확실성이 광범위하다”며 “Fed가 3월 FOMC에서 금리인상을 건너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3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전망한 전문가 비율은 지난 11일 40.2%였지만, 13일 19시 기준으로는 0%로 급락했다. 반면 전에는 0%였던 기준 금리 동결 전망은 41.7%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전망한 전문가 비율은 59.8%에서 58.3%로 비슷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008년과 같은 금융 시스템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은 작지만, 후폭풍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채권시장에선 미 연준의 정책 수정 가능성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짙어 연준의 정책 행보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다”며 “국내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SVB 파산 요인, 사태 진행 추이, 미 당국 대처 등을 점검하라고 주문했다.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 건전성의 ‘약한 고리’로 꼽히는 부동산PF 상황을 점검한다. 이번 사태의 여파가 자금 공급 경색으로 이어질 경우 자칫 부동산 PF 부실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질 수 있어서다. 또 거래 상대방의 부도로 은행이 대규모 손실을 떠안는 상황을 막기 위해 ‘거액 익스포저(위험노출액)’ 한도 규제를 내년 3월 말까지 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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