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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 "황금기 지났단 말 믿지말라"…인간승리 돋보인 오스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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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러분,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세요. 이 상을 저희 엄마와 전 세계 어머니들께 바칩니다. 올해 여든넷, 말레이시아에서 중계를 보고 있을 엄마, 사랑합니다. 트로피 집에 가져갈게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로 아시아계 최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말레이시아계 배우 양쯔충(楊紫瓊‧양자경)의 목소리가 벅차올랐다. 그가 데뷔 39년 만에 아시아계 배우론 처음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하며 아카데미 95년 역사를 새로 썼다. 유색인종 배우가 수상한 건 이번이 두번째다. 21년 전 유색인종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몬스터 볼’)을 받았던 할 배리가 시상자로 나와 양쯔충을 힘껏 부둥켜안았다.

예순 양쯔충이 데뷔 39년만의 첫 오스카 트로피를 쥐었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그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예순 양쯔충이 데뷔 39년만의 첫 오스카 트로피를 쥐었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그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에에올' 7관왕…보트피플 소년의 오스카 수상

'에에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말하는 양쯔충. 신인 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의 독특한 상상력과 양쯔충의 노련한 액션 연기가 잘 만났다고 평가 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에에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말하는 양쯔충. 신인 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의 독특한 상상력과 양쯔충의 노련한 액션 연기가 잘 만났다고 평가 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세상 모든 엄마에게 바치는 괴랄한 영화 ‘에에올’이 오스카(아카데미상 애칭)를 휩쓸었다. 13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간 언더독으로 치부됐던 중견 배우들과 이민자, 괴짜들의 인간 승리가 돋보인 무대였다.
최고상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각본‧여우주연‧여우조연‧남우조연‧편집상 등 최다 7관왕을 차지한 ‘에에올’은 인생 막장을 맞은 미국 차이나타운 세탁소 아줌마 에블린(양쯔충)이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세상과 가족의 구원자로 거듭나는 판타지 액션 영화다.
데뷔작 ‘스위스 아미 맨’(2016)부터 황당무계한 상상력으로 주목받은 괴짜 신인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이하 다니엘스 감독)이 공동 연출한 두 번째 장편이다. 이들의 독창적인 세계관에 그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중견 배우들의 열연이 만나 흥행은 물론 상복까지 터졌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호명된 양쯔충이 동료 배우들과 부둥켜 안으며 축하하고 있다. EPA=연합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호명된 양쯔충이 동료 배우들과 부둥켜 안으며 축하하고 있다. EPA=연합

'에에올'로 여우주조연상을 나란히 받은 배우 양쯔충과 제이미 리 커티스. 오랜 경력의 두 배우는 이 영화로 처음 오스카를 차지했다. 시상식 내내 손을 꼭 잡는 등 돈독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은 시상식 이후 무대 뒤에 함께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다. 로이터=연합

'에에올'로 여우주조연상을 나란히 받은 배우 양쯔충과 제이미 리 커티스. 오랜 경력의 두 배우는 이 영화로 처음 오스카를 차지했다. 시상식 내내 손을 꼭 잡는 등 돈독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은 시상식 이후 무대 뒤에 함께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다. 로이터=연합

첫 오스카(남우조연상)를 거머쥔 베트남계 키 호이 콴은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1984), ‘구니스’(1985) 등에 출연한 아역 배우 출신이다. 한물 간 아역 스타로 끝날 뻔한 배우 생명이 ‘에에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엄마, 나 오스카상 탔어요!”라고 외친 그는 공산 베트남을 탈출한 난민 ‘보트피플’ 출신임을 밝히며 “오랫동안 난민 캠프에 있었다. 보트를 타고 긴 여정을 거쳐 이렇게 큰 무대까지 올라왔다. 이게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라 말하곤 울먹였다. “꿈을 거의 포기했었다. 다시 받아주셔서 감사하다”는 그에게 아역 시절 ‘인디아나 존스’를 함께 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객석에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결과

"'에에올' 수상도 정상 아냐, 기준 맞추려 노력말라"

12일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7관왕을 차지한 '에에올' 팀이 무대 뒤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에에올'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 키 호이 콴, 제임스 홍과 제작자 조나단 왕, 배우 양쯔충, 스테파니 슈, 그리고 공동 감독 다니엘 쉐이너트, 다니엘 콴이다. AFP=연합뉴스

12일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7관왕을 차지한 '에에올' 팀이 무대 뒤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에에올'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 키 호이 콴, 제임스 홍과 제작자 조나단 왕, 배우 양쯔충, 스테파니 슈, 그리고 공동 감독 다니엘 쉐이너트, 다니엘 콴이다. AFP=연합뉴스

모든 수상의 공을 “배우들의 창의성과 천재성 덕분”으로 돌린 다니엘스 감독은 9번째 감독상 후보에 오른(감독상 수상은 2회) 스필버그를 제치고 감독 뿐 아니라 각본‧작품상까지 받으며 차세대 거장 자리를 예약했다. ‘에에올’로 편집상을 받은 폴 로저스 감독도 “이번이 제 두 번째 영화인데 과분하다”며 흥분했다. 신인들의 뚝심 있는 창의성이 아카데미 세대 교체를 이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민자 출신의 다니엘 콴 감독은 “미국에 이민 오신 저희 부모님, 아버지는 영화광이었고 어머니는 댄서나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 재능을 물려받았다”면서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마시라. 저희가 이런 상을 받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웃음) 모든 사람에겐 각각의 천재성이 있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에에올’의 제작자 조나단 왕은 “많은 이민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께 바치고 싶다”면서 “(아버지는) 항상 수익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다”고 돌이켰다.
스크린 데뷔작 ‘할로윈’(1978)부터 80~90년대를 풍미한 '호러 퀸' 제이미 리 커티스도 ‘에에올’로 첫 오스카 후보에 올라 여우조연상을 차지했다. 고인이 된 어머니 자넷 리, 아버지 토니 커티스 모두 오스카 후보에 올랐었다며 “저도 탔어요!”라며 젖은 눈빛으로 트로피를 높이 치켜들었다.

독어·인도어·수어·와칸다어…다문화 축제

화려하게 복귀한 왕년의 스타는 또 있다. ‘미이라’ 시리즈 등 1990년대 미남 스타로 활약했지만 잦은 부상과 수술 부작용, 이혼, 할리우드 유력자의 동성 성추행 등으로 경력이 단절되다시피 했던 브랜든 프레이저는 272㎏의 고도 비만 주인공을 열연한 ‘더 웨일’로 성공리에 복귀했다. 자신의 삶의 드라마가 영화에서 완성됐다는 평가와 함께 오스카 첫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올해 남우주연상 부문은 그를 비롯해 73세 영국 배우 빌 나이(‘리빙’), 데뷔작(‘애프터썬’)으로 호명된 아일랜드 배우 폴 메스칼 등 다섯 후보 모두 아카데미에 처음 노미네이트된 배우로 채워졌다. 아카데미상을 투표하는 회원들의 국적‧성별‧나잇대가 다양화한 결과로 보인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인도 영화 'RRR'의 주제가 'Naatu Naatu' 축하 공연이 펼쳐지고있다. AP=연합뉴스

12일(현지 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인도 영화 'RRR'의 주제가 'Naatu Naatu' 축하 공연이 펼쳐지고있다. AP=연합뉴스

시상식 무대에서는 어느 해보다 다양한 언어가 들려왔다. 넷플릭스의 독일 전쟁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국제장편영화‧음악‧미술‧촬영상 등 4관왕에 올랐고, 인도 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는 인도 동남부 지역 언어 텔루구어 주제가 ‘Naatu Nattu’로 주제가상을 받았다.
또 아프리카 전통 복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의상상을 가져가는 등 수상 경향에 다문화가 엿보였다. 지난해 남우조연상 수상자인 청각장애 배우 트로이 코처도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그의 수어에 음성 통역이 지원되기도 했다.

푸틴 정적 '나발니' 다큐상 "러시아 침공 불공정, 독재자 반대" 

 마블 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 속 가상 아프리카 왕국 와칸다 언어까지 등장했다.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삽입곡 'Lift me Up' 공연무대 전에는 이 시리즈에 출연한 짐바브웨계 배우 다나이 구리라가 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코사어가 토대인 와칸다 언어로 "왕이시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3년 전 세상을 떠난 '블랙 팬서' 배우 채드윅 보즈먼을 추모하기도 했다. [AP=연합]

마블 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 속 가상 아프리카 왕국 와칸다 언어까지 등장했다.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삽입곡 'Lift me Up' 공연무대 전에는 이 시리즈에 출연한 짐바브웨계 배우 다나이 구리라가 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코사어가 토대인 와칸다 언어로 "왕이시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3년 전 세상을 떠난 '블랙 팬서' 배우 채드윅 보즈먼을 추모하기도 했다. [AP=연합]

반전 주제도 도드라졌다. 장편 애니메이션상은 멕시코계 거장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동명 고전 동화를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파시즘에 맞선 소년의 이야기로 풀어낸 넷플릭스의 ‘피노키오’가 받았다. 장편 다큐멘터리상의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살 시도를 다룬 작품이다. 그간 정치색을 잘 드러내지 않은 아카데미에선 이례적인 수상 결과다.
연출을 맡은 다니엘 로허 감독은 수상 무대에서 독방에 구금 중인 나발니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부당하다. 우리는 독재자에 반대해야 한다.” 나발니를 대신해 시상식에 참석한 아내 율리아는 “우리나라가 자유로워지는 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명단

작품상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

감독상 | ‘에에올’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여우주연상 | ‘에에올’ 양쯔충
남우주연상 | ‘더 웨일’ 브랜든 프레이저
여우조연상 | ‘에에올’ 제이미 리 커티스
남우조연상 | ‘에에올’ 키 호이 콴
각본상 | ‘에에올’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각색상 | ‘위민 토킹’ 사라 폴리
음악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볼케르 베르텔만
주제가상 | ‘RRR'-‘NAATU NAATU’
미술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크리스티안 골드벡 외
분장상 | ‘더 웨일’ 애드리언 모로 외
의상상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루스 E 카터
촬영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제임스 프렌드
편집상 | ‘에에올’ 폴 로저스
시각효과상 | ‘아바타: 물의 길’ 조 레터리 외
음향상 | ‘탑건: 매버릭’ 마크 웨인가르텐 외
장편 애니메이션상 | ‘피노키오’
장편 국제영화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독일)
장편 다큐멘터리상 | ‘나발니’
단편 다큐멘터리상 |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단편 영화상 | ‘언 아이리쉬 굿바이’
단편 애니메이션상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진 허숄트 박애상(공로상) | 마이클 J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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