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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3·1운동이 세계에 알려진 배경, 테일러의 집 ‘딜쿠샤’에서 찾다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소중 친구 여러분. 13기 학생기자 추승찬입니다. 저는 3·1절을 맞아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 일명 딜쿠샤에 다녀왔어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를 도운 외국인이 살던 집이 독립문 근처에 잘 보존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자유 관람제로 예약하지 않고 갔더니 따로 해설해주시는 분은 없었지만, 대신 2층에서 테일러 부부가 어떻게 3·1운동을 세계에 알리게 되었는지 담은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앨버트 W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는 미국인 기업가이자 언론인인데요. 그는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1923년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붉은 벽돌 건물을 지었고, 부인인 메리(Mary Linely Taylor)가 인도의 딜쿠샤 궁전에서 따와 딜쿠샤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 힌디어로 ‘이상향’이란 뜻이 있고,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건물 바깥쪽에 딜쿠샤 1923(DILKUSHA 1923)이라고 이름과 건립연도가 적힌 정초석을 찾아볼 수 있죠. 1926년 불이 났는데 1930년에 다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딜쿠샤의 1층과 2층에는 모두 거실이 있다. 당시 모습과 비슷하게 재현한 거실을 보고 추승찬 학생기자는 "이런 집에서 살면 좋겠다"고 했다.

딜쿠샤의 1층과 2층에는 모두 거실이 있다. 당시 모습과 비슷하게 재현한 거실을 보고 추승찬 학생기자는 "이런 집에서 살면 좋겠다"고 했다.

대한제국 및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서 금광과 무역 사업을 하던 앨버트 테일러는 미국 언론사인 AP통신의 서울 특파원이기도 했어요. 그는 1910년부터 서울에 거주했는데, 1919년 3·1독립선언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해외로 알려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전파했죠. 3·1만세운동 당시 메리는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는데요. 그 병원에 3·1운동을 위한 독립선언서가 몰래 숨겨져 있었던 겁니다. 독립선언서를 발견한 앨버트는 이를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 숨겼다가 AP통신을 통해 온 세상에 알릴 수 있었죠.
3·1독립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는데요. 일제는 3·1운동에 대한 보복행위를 잔인하게 벌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암리 학살사건이에요. 경기도 수원(현재 화성시) 제암리의 한 작은 마을 예배당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총칼로 학살한 겁니다. 게다가 예배당에 불을 질러 마을을 다 태우고 말았어요. 앨버트는 제암리 학살사건 현장을 취재해 보고했죠. 그가 어떻게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세상에 알렸는지에 관한 편지와 사진, 기사 등 자료는 딜쿠샤 내부에 전시돼 있어요.

딜쿠샤 내부에는 앨버트 테일러가 어떻게 3·1독립만세운동을 해외로 전파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는지 전시돼 있다.

딜쿠샤 내부에는 앨버트 테일러가 어떻게 3·1독립만세운동을 해외로 전파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는지 전시돼 있다.

이로 인해 앨버트는 일제에 의해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2년 한국에서 추방됩니다. 테일러 부부가 추방된 후 딜쿠샤는 앨버트의 동생 윌리엄이 잠시 관리하다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갔어요. 1959년 자유당 조경규 의원이 딜쿠샤를 샀는데, 부정축재자가 된 그의 재산이 1963년 국가로 넘어가면서 딜쿠샤는 오랜 시간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잊혀 본모습을 잃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2005년, 앨버트의 아들인 브루스(Bruce Tickell Taylor)는 딜쿠샤를 찾기 위해 의뢰했고, 이를 받은 김익상 서일대학교 교수가 여러 노력 끝에 딜쿠샤를 찾아냈어요. 2006년 브루스는 마침내 66년 만에 자신이 어린 시절에 살던 딜쿠샤를 만날 수 있게 됐죠. 딜쿠샤에 얽힌 일화에 저도 감격스러워 울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딜쿠샤는 세상에 알려졌고, 브루스의 딸 제니퍼가 조부모인 테일러 부부의 유품과 사진, 자료를 기증하면서 복원할 수 있게 됐어요.

3·1절을 맞아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를 찾은 추승찬 학생기자.

3·1절을 맞아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를 찾은 추승찬 학생기자.

사진에 남은 당시 모습을 재현하고 가구 등을 놓은 현재 딜쿠샤는 저도 이런 집에 살고 싶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았던 공간은 1층과 2층에 있는 거실이에요. 벽난로와 여러 가구가 놓인 모습이 멋스럽게 느껴졌거든요. 1층에는 커다란 괘종시계, 2층에는 병풍 등 인테리어 소품이 인상적이었죠.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하면 전시 해설도 들을 수 있다고 하니 딜쿠샤를 방문할 소중 친구들은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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