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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7)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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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에게 꾸중을 들은 장비가 칼을 빼 자결하려고 하자 유비가 달려들어 막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옛말에 형제는 수족 같고 처자는 의복 같다고 했다. 의복이 찢어지면 다시 기우면 되겠지만 수족이 갈라지면 어떻게 다시 잇겠느냐?

유비가 이 말을 하면서 울자, 관우와 장비도 깊이 감동해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면 유비란 인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유비는 정녕 형제가 자식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요. 가부장적 봉건제 사회에서 그것은 모순입니다. 왕권 같은 권력도 직계혈통에 물려주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방계인 형제가 직계인 자식의 자리를 빼앗지 못하도록 모든 조처를 하기까지 합니다. 처첩제가 공인된 시대이니 부인은 자식만 못할 수 있습니다만, 이것도 미모와 현명함, 처가의 영향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유비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관우와 장비의 마음을 확실하게 붙잡기 위해서입니다. 군웅할거시대에 유비는 제일 볼품없는 군웅입니다. 가슴속에 품은 야심은 조조를 능가하지만, 현실적인 힘인 무력(武力)은 미약했습니다. 그나마 관우와 장비의 뛰어난 무공(武功)이 유비의 든든한 보루인 셈입니다. 이때, 장비의 실수를 질책해 그가 자결한다면 도원결의의 굳은 신념에 따라 관우도 자결하거나 떠날 것입니다. 야망 가득한 유비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조조를 능가하는 임기응변으로 두 의형제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유비라는 인물의 특기이지요. 게다가 장기(長技)인 눈물까지 사용하니 형제의 가슴 속에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동의 물결이 넘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연의 속으로 돌아가지요. 유비와 대치하고 있던 원술은 여포가 서주를 빼앗은 것을 알자 곧바로 사람을 보내 양곡과 말, 금은과 비단을 잔뜩 줄 테니 유비를 협공하자고 제안합니다. 여포는 원술의 제안을 두말없이 승낙하고 부장 고순에게 5만 명의 군사를 주고 유비의 배후를 습격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를 안 유비는 장맛비를 이용해 군사를 물려 달아났습니다. 고순이 군사를 몰고 들이닥쳤지만 결국 헛걸음만 한 꼴이 됐습니다. 그래도 원술이 약속한 것은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원술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태사자의 결박을 풀고 수하로 맞아들이는 손책. [출처=예슝(葉雄) 화백]

태사자의 결박을 풀고 수하로 맞아들이는 손책. [출처=예슝(葉雄) 화백]

고순이 비록 오기는 했으나 유비를 제거하지 못했으니, 유비를 잡게 되면 그때 가서 약속한 물건들을 보내 드리리다.

전투에서 승리하지 않았으니 전투를 치르느라 소요된 물자는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지요. 여포가 뿔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불같은 성격의 여포를 진궁이 다독여 출군을 멈췄습니다. 유비는 여포가 온다는 말에 놀라 광릉을 뺏으러 갔다가 원술의 기습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여포가 유비를 부르자 유비는 아우들을 타이르며 서주로 갑니다. 여포도 유비가 의심할 것을 우려해 먼저 사람을 시켜 유비의 두 부인인 감부인과 미부인을 보냅니다. 여포는 반갑게 유비를 맞이하고 성을 차지한 연유를 말했습니다.

내가 성을 뺏으려고 한 것이 아니오. 영제(令弟)인 장비가 술에 취해 살인까지 저지른다기에 실수하는 일이 있을까봐 일부러 지켜드리려고 왔던 것뿐이외다.

그러자 유비는 여포에게 서주를 양보하려고 했다며 성을 받으라고 합니다. 여포는 건성으로 서주를 사양하고, 유비는 극력으로 서주를 바쳤습니다. 지키지 못할 것을 억지로 맡은 유비. 차지하고 싶지만 억지로 참고 있는 여포. 이 둘이 만들어내는 대화의 해답은 너무도 뻔합니다.

'나 진짜 갖기 싫을 것을 억지로 맡았는데, 너는 그렇게 갖고 싶어 하니 네가 가져라.'

유비도 좋고 여포는 더욱 좋은데, 속이 부글부글 끓는 사람이 있었으니 관우와 장비였습니다. 유비가 이런 두 아우에게 복장(腹臟)이 터지는 말을 합니다.

몸을 굽히고 분수를 지키며 때를 기다려야지 운명과 싸우려 들어서는 아니 된다.

모종강도 이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여포가 연주를 기습했어도 조조는 금방 연주를 되찾았지만, 여포가 서주를 기습하자 유비는 서주를 되찾지 못했다. 유비의 재능이 못해서가 아니라 현실이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여포가 유비에게 의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유비가 여포에게 의탁하는 신세가 됐다. 손님은 주인이 되고 주인은 손님이 되었으니, 유비의 갈 길 역시 험난하기만 하다.

신이 난 여포는 유비가 있는 소패로 양곡과 옷감들을 보내줬습니다. 이제 다시 두 사람은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포가 유비에게 준 것은 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관중본을 살펴보면 ‘여포가 유비를 예주자사(豫州刺史)가 되게 했다’고 나옵니다. 서주를 차지한 여포도 나름대로 유비를 위해 애썼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종강본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악인 조조에 이어 여포도 배신을 밥 먹듯 하는 ‘패륜아’로 낙인찍었기에 이에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한편, 손책은 원술 밑에서 연전연승하자 원술이 크게 신임합니다. 그리고 손책 같은 자식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원술이 아끼는 손책이건만 정작 손책은 우울했습니다. 부친인 손견처럼 영웅이 돼 천하를 도모하지 못하고 남의 밑에 있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고 한스럽기만 했습니다. 이러한 손책에게 주치와 여범이 계책을 내줬습니다. 손책은 부친이 남겨놓은 옥새(玉璽)를 원술에게 맡기는 대신 3천 명의 군사를 얻어 원술에게서 벗어납니다.

알몸으로 산적들을 무찌르고 손권을 구하는 주태. [출처=예슝(葉雄) 화백]

알몸으로 산적들을 무찌르고 손권을 구하는 주태.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후 손책은 주유, 정보, 황개, 한당 등 옛 장수들과 함께 강동을 차례로 평정하며 기틀을 다져나갑니다. 그리고 양주자사 유요에게 의탁하고 있던 태사자를 여러 번의 싸움 끝에 마침내 수하로 맞아들입니다. 손책의 아우인 손권은 주태와 선성(宣城)을 지키다가 밤중에 산적 떼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주태는 알몸으로 도적들과 싸우며 손권을 지켜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태가 중상을 입고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손책은 백방으로 수소문해 명의 화타를 모셔오게 합니다.

양주자사 유요. [출처=예슝(葉雄) 화백]

양주자사 유요.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책은 강동을 평정하고 원술에게 옥새를 돌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황제가 되고픈 야심이 있는 원술은 둘러만 댈 뿐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한술 더 떠서 빌려 간 군사로 강동을 차지하고 은혜도 안 갚는 무례한 놈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는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큰소리 쳤습니다. 그러자 수하인 양대장이 강동은 지형이 험난해 공격이 어려우니 뒤로 미루고, 우선은 지난날 무고하게 공격해왔던 유비를 쳐서 원한을 갚을 것을 주문했습니다. ‘서주’라는 혹을 떼고 소패로 물러난 유비에게 또다시 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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