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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친, 돈 주고 군대 안 갔어요"…'병역의 신' 잡게한 첩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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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남부지검에 서울지방병무청으로부터 병역 면탈로 의심되는 첩보가 전달됐다. 일회성의 병역 면탈이 아니라 모두 뇌전증(간질)을 빙자했으며 브로커가 연루된 구체적인 정황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 남자친구가 돈을 주고 군대에 안 갔어요”,“네이버 카페에서 뇌전증으로 군대 면제받는 방법을 알려준다”,“멀쩡하던 친구가 뇌전증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첩보 내용은 대부분 병역 면탈자의 동료와 애인 등 가까운 사람들의 증언이었다.

서울남부지검에서 병무 전담 수사를 맡고 있던 이재원(36·사법연수원 42기) 검사는 병무청 특별사법경찰관으로부터 해당 내용을 전달받은 뒤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이 검사는 “과거 병역 면탈·비리 사건에선 브로커가 개입해 뇌전증을 빙자한 사례는 없었다”며 “첩보 내용만으로도 브로커를 중심으로 다수의 병역 감면·면탈 사례가 있을 것으로 추정돼 브로커에 대한 수사에 우선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재원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재원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 검사는 병무청 특사경이 사건을 넘기기 전부터 수사 방향을 논의하고 압수수색영장 작성 단계에서도 공조했다. 검찰과 병무청 특사경은 두 달에 걸친 수사 끝에 ‘병역의 신’이라며 자신을 군 전문 행정사로 소개한 브로커 A씨를 지난해 11월 중순 전격 체포했다. 한 차례 소환조사도 없이 계좌와 통신기록, 의무기록 등 물적 증거만으로 체포영장을 받아냈다.

이 검사는 “관련자를 바로 소환할 경우 수사 사실 노출로 증거 인멸 시도가 있을 것을 우려해 최대한 많은 물적 증거를 확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같은 증거를 토대로 체포영장 단계에서부터 A씨와 병역 면탈 피의자들의 만남, 발작 증세, 병원 진단, 병무청 신체검사로 이어지는 병역면탈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A씨 체포와 함께 진행된 A씨 자택 압수수색은 병역 면탈 사건의 전모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별도의 사무실을 두지 않고 일해온 A씨는 자택 PC에 병역면탈 관련 각종 상담 기록과 뇌전증 진단을 받기 위한 시나리오 파일 등을 보관하고 있었다. A씨가 PC를 은닉했거나 파손했다면 첩보에서 드러나지 않은 추가 병역 면탈자에 대한 수사는 어려울 수 있었다.

 서울남부지검 청사. 연합뉴스

서울남부지검 청사. 연합뉴스

검찰은 지난해 12월 초 병무청과 합동수사팀을 꾸리며 수사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지난 1월 A씨를 구속기소 했고, A씨와 공모해 병역을 면탈한 42명과 공범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병역 면탈자 중에는 의사와 배구·축구·골프 선수, 배우 등 유명인도 다수 포함됐으며, 또 다른 병역 브로커도 최근 기소했다. 검찰은 13일 병역 면탈 사건의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재원 검사는 “병역브로커는 경제적 이익을 얻고, 면탈자는 병역 면제의 이익을 얻는 구조라서 관련자들로부터 진술 확보가 어려워 물증 확보가 중요한 사건이었다”며 “수사지휘권을 매개로 검찰과 특사경이 긴밀하게 협력해서 뇌전증 위장 병역면탈 사건을 규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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