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여정 부부장에 이어 인민군 총참모부까지 동원해서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며 대남 군사 도발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주 북한군 총참모부가 존재하지도 않는 한국군 포사격 훈련을 이유로 자신들도 대응 조치를 했다고 주장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에 앞서 구사했던 ‘가짜 깃발 작전’을 연상시킨다. 도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마치 먼저 위협당한 것처럼 포장하는 선전전이다.
요즘 한·미 금리 차에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환율 걱정이 큰 데 환율 폭등의 위기는 경제만 아니라 안보에도 있다. 1998년 환율이 1900원대를 찍었던 외환(IMF) 위기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크게 흔들릴 때였다. 역시 안보가 흔들려 국가 존속의 위기가 와도 원화는 종잇조각이 된다. 다행히도 안보위기에 관한 한 한국에선 IMF 위기를 방불케 하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바 없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때나 천안함 침몰 원인 발표 때 환율이 잠시 흔들린 적은 있었지만 결국 회복했다. 환율에 관한 지금 김여정의 입보다는 제롬 파월의 입이 더 무섭다.
안보위기가 진짜 환율위기 불러
한국은 전력증강·미군 안전장치
미군 철수? 비상식·비정상 발상
물론 경제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위기가 안보 위기다. 내일 모래 휴전선이 뚫릴 것 같다고 시장이 판단하는 순간 한국의 자산시장은 일순간에 무너지고 개별은행이 겪는 뱅크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코리안런이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전술핵으로 남한을 칠 수 있다”며 핵 공격을 위협하는 데도 사람들이 원화를 달러로 바꿔치우며 한국을 떠나갈 태세를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젠 한국이 이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6·25 때와는 달리 경제 발전에 기반한 전력 증강으로 북한군에 대등하거나 앞서는 재래식 전력을 확충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밀려 낙동강까지 내려갈 가능성은 적다.
다른 하나는 아예 북한이 전쟁을 또 일으킬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연합방위 시스템이다. 남의 나라를 끌어들여 한국 방위에 활용하는 방식인데, 즉 주한미군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군을 한반도에 끌어들인 건 한국이 아니라 북한이었다. 북한이 6·25 남침을 하지 않았다면 3만 명에 육박하는 미군이 한반도에 지금까지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어찌 됐건 북한이 제2의 한국전쟁을 획책해 서울을 향한 최단 공격로인 서부 전선에서 남하한다면 동두천의 미군 210화력여단을 건너뛰고 올 수 없다. 이곳을 그냥 놔두고 내려왔다간 등 뒤에서 다연장로켓(MLRS)의 불벼락을 맞는다.
과거엔 더 촘촘했다. 임진강 자유의 다리 북쪽의 캠프 그리브스, 다리 남쪽의 문산으로 내려와 캠프 개리오웬, 여기서 동쪽으로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 다시 그 남쪽 의정부 시내의 캠프 레드클라우드 등 북한군 진격로엔 크고 작은 미군 부대가 자리했다. 북한군이 문산-동두천-의정부의 삼각형을 뚫고 서울로 내려오려면 곳곳에 배치된 한국군은 물론 미군과 반드시 조우해야 했다.
이젠 서울의 북쪽을 지키던 주한미군 2사단 전체가 평택으로 남하하며 서부전선 방어는 온전히 한국군 몫이 됐지만 한·미 연합사 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지금도 북한은 한국과 전쟁을 하려면 미국과도 전쟁해야 한다. 한국이 지난 수십년간 국민이 흘린 피와 땀을 모아 전력을 증강했고, 동시에 한국이 주둔비용을 부담하면서 미군이 인계철선 역할을 하고 있으니 북한의 국지 도발에도 환율은 한 차례 요동치고 마는 식이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제3자적 판단 능력이다. 내 입장이 아닌 객관적 타자의 시선에서 봐야 상황 파악이 명료해진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이해하고 싶다면 북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된다. 평양 노동당 청사에서 근무 중인 당원이 돼 ‘조국이 생존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면 답은 명쾌하다. 가령 이럴 것이다.
‘조국해방전쟁은 승리 직전 미군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지금도 미제가 남조선 괴뢰정권을 지켜주고 있다. 따라서 조국 해방을 완성하려면 미제를 몰아내야 하고, 미제를 몰아내려면 한·미동맹 체제를 와해시켜야 하며, 동맹을 해체하려면 그 출발인 주한미군부터 철수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달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주한미군 철수 깃발을 내걸고 이를 외쳤다는 것만으로 기소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법이 아닐 뿐 정상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이런 주장을 듣는 자체가 시간 낭비다. 환율이 어디까지 뚫을 수 있을지를 보고 싶다면 주한미군 철수 속 북한의 대남 포격이라는 환장의 콜라보를 떠올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