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호주 아발론 국제에어쇼'에 첫 참가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Black Eagles)가 아발론 공항 상공에서 국산 T-50B로 공중 기동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개막해 이달 5일까지 열린 이번 행사에서 블랙이글스는 아찔한 공중곡예와 절도 있는 팀워크로 종합 최우수상까지 수상했다. 사진 공군
“쉬유우웅--”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호주 남부 빅토리아주 멜버른의 하늘이 눈 깜짝할 새 두 쪽 났다. 수만 관중이 운집한 아발론 공항을 박차고 올라 남반구의 가을 하늘에 선명한 비행운(飛行雲)을 남긴 것은 국산 초음속 항공기 T-50B. 총 8대로 구성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다. 태극마크 전투기가 뿜어낸 청·홍·백 삼색 물결이 일렁이더니 이내 2대의 교차 비행 속에 거대한 태극마크가 하늘을 수놓았다. 30여분간 펼쳐진 24개의 고난도 공중곡예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호주 에어쇼에 한국군 첫 참가
자주포·장갑차 현지공장도 지어
높아진 인도태평양 파고에 대응
한국과 ‘전략적 동반’ 관계 강화
지난 5일(현지시간) 한국여성기자협회 주관 ‘인도·태평양 안보전략’ 취재차 방문한 ‘2023 호주 아발론 국제에어쇼’ 현장. 지난달 28일 개막해 이날까지 계속된 에어쇼는 각국에서 700여 업체가 참가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와 나란히 열렸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한화디펜스 호주법인이 각각 FA-50 경공격기와 5세대 궤도형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 홍보 부스를 마련했다.
특히 한화는 아발론 공항이 위치한 질롱 시의 15만m² 부지에 해외 첫 생산공장까지 짓고 있다. 내년 완공하면 여기서 K-9 자주포의 호주형 모델인 AS9 헌츠맨과 AS10 탄약보급장갑차를 생산해 2027년까지 호주 육군에 납품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화디펜스 관계자는 “조만간 이뤄지는 호주 군 현대화 작업을 겨냥해 레드백이 맞춤 설계된 터라 채택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아발론 에어쇼에 블랙이글스가 올해 처음 참가한 것도 이 같은 ‘방산 협력’과 맞물린다. 그 핵심 고리가 되는 게 호주가 이르면 내달 내놓을 새 국방전략 보고서다. 지난해 5월 정권교체로 선출된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와 노동당 정부는 지난 6개월간 이를 검토했고 현재 막바지 단계다.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적 환경 변화에 맞춘 이번 보고서를 기반으로 5월쯤엔 역대급 국방 예산안도 공개될 예정이다. 최근 폴란드 수주 등으로 이름값을 올리고 있는 K방산으로선 전망 좋은 시장이다.

호주 맬버른의 아발론 공항에서 열린 '2023 호주 아발론 국제에어쇼'에서 '이글 스내치(Eagle Snatch)' 기동을 선보이고 있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사진 공군
호주가 말하는 인태 전략적 환경 변화란 한마디로 중국의 부상(浮上)이다. 수도 캔버라에 위치한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알렉스 브리스토 박사는 “2차 대전 이후 호주는 지리상 상대적으로 안전했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역내 전략적 환경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여러 나라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손에 꼽히는 게 2021년 9월 영국·미국과 깜짝 발표한 3자 협의체 오커스(AUKUS)다. 당시 3국은 향후 18개월 간 영·미가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공동 지원하는 데 합의했고, 이 청사진 공개 시한이 임박함에 따라 세계의 이목이 호주로 쏠리고 있다.

'2023 호주 아발론 국제에어쇼'가 열린 아발론 공항에 참가국들 국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하늘에 태극 문양을 만들고 있다. 사진 공군
중국의 군사 팽창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일본의 안보 무력 강화 등과 맞물려 호주의 ‘핵잠’ 취득은 되레 역내 긴장을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시선을 의식해 호주는 새 잠수함이 핵을 탑재하는 게 아닌 핵추진잠수함일 뿐이며 취득·운용 과정도 투명하게 진행될 것이라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그 목적이 중국의 부상에 따른 역내 균형 강화에 있단 점을 강조한다. 캔버라 의회의사당에서 만난 팀 와츠 외교부 부장관은 “오커스는 호주의 억지력을 증진해 역내 전략적 균형점을 만들어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트 시슬스웨이트 국방부 부장관도 “호주는 해안이 매우 긴 섬나라라서 개방된 해양운송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이를 엄호할 국방력 강화 차원에서 오커스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중국과의 통상 마찰에서 ‘맷집’을 과시한 호주는 파이브 아이즈(미·영·호주·캐나다·뉴질랜드의 기밀정보 동맹) 멤버로서 미국과 끈끈하다. 미·인도·일본과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로도 맺어져 있다. 여기에 지난해 1월 일본과 양국 군 협력 강화를 위한 ‘원활화협정(RAA)’을 체결했다. 아·태 11개국이 함께 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주도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도 적극적이다.

5일 호주 캔버라 의회의사당(Parliament House)에서 만난 매트 시슬스웨이트 국방부 부장관. 사진 호주외교부

6일 호주 캔버라 의회의사당(Parliament House)에서 만난 팀 와츠 호주 외교부 부장관. 사진 호주외교부
역내 통상 교류를 두텁게 하면서 이를 강화된 국방력으로 호위하기. 호주가 역내 안보 지역강국(regional power)으로 도약하려는 움직임은 미국의 인태 전략 변화와 맞물린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은 “냉전 시대 미국은 인태 지역에서 자국 중심의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전략을 펼쳤지만, 중국의 부상 이후 이를 다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허브(거점)로서 각 동맹국과 바퀴살(spoke)처럼 일대일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각국에 우방국 연계를 강화시켜 ‘허브스(hubs) 앤 스포크’를 만드는 식이다. 미국으로선 국방예산 부담도 덜고 우방국들이 방위전략과 운용체계를 공유함으로써 ‘실전’에 대한 대응력도 높일 수 있다. 최근 한·일 간 화해 기류를 미국이 노골적으로 반기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안보지형 변화 속에 호주는 2021년 한국과 외교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로 격상하고 ‘피치블랙’ 등 합동훈련에 적극적인 한편 방산 투자유치에도 열의를 보이고 있다. 그 도화선이 된 게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브리스토 박사는 “호주는 이번 전쟁으로 주권 보호를 위해 무기 생산 시설을 자국에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한국과 협력을 통한 방산 기술 이전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급변하는 인태 전략적 환경 속에 새롭게 짜이는 통상·방산 공급망에서 한국 정부의 기민한 대응이 필요한 때다.
☞한·호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한국·호주 수교 60주년을 맞은 2021년 12월 양국 정상 합의 하에 격상된 양자 외교 관계. 전략과 안보, 경제 혁신과 기술, 인적 교류 등 세 축에서 협력 강화를 골자로 한다. 한국은 호주의 4대 교역국이자 4번째로 큰 수출 대상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