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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기설 이틀 만에 무너진 미국 16위 은행,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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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금 빨아들였던 미 SVB, 급격한 금리 인상 탓 파산

국내 영향 없도록 금융 상황 전반 면밀히 점검해야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총자산 2090억 달러(약 277조원)인 미국 내 자산 순위 16위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했다. 미국 스타트업과 IT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둔 SVB는 지난 40년간 실리콘밸리의 산파 역할을 해온 혁신금융의 상징이다. 그런 은행이 유동성 위기설이 흘러나온 지 이틀 만에 파산하면서 실리콘밸리 생태계 붕괴를 넘어 2008년과 같은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돌이켜보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초저금리로 투자가 넘쳐 IT업계 호황이 이어지는 와중에 정부 지원금 살포 등으로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예금이 쏟아져 들어온 게 SVB에 독이 됐다. 2020년 1분기 말 600억 달러 수준이었던 예금잔액은 2021년 말 1890억 달러까지 늘었다. 가파르게 늘어난 예금만큼 정작 대출은 늘지 않아 SVB는 미 국채 등에 투자했다. 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과 테크 산업 불황이 겹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주요 고객인 벤처캐피털(VC)과 테크 기업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면서 SVB는 국채를 팔아야 했는데,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급락하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에만 18억 달러 손실을 냈고, 다음 날인 9일 이를 메우기 위한 증자 계획을 발표한 게 오히려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을 유발해 결국 강제 영업 중단에 이르렀다. 13일 예금 인출이 시작되지만 전체 예금의 93%가 예금자 보험(25만 달러) 한도를 넘어서는 건 또 다른 뇌관이다.

SVB가 대규모 자산 손실을 입은 것은 Fed가 지난 1년간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에서 4.75%까지  급격하게 인상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Fed의 금리 인상 향방 역시 불확실해졌다. 미국 금융감독 당국은 미국 내 주요 은행들은 자산이 다양하게 분산돼 있어 큰 위기를 겪지 않을 거라는 낙관적인 분석을 한다. 하지만 오는 21~22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당초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시사한 대로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경우 이미 채권값 하락으로 자금난을 호소하는 중소형 은행은 위기로 내몰릴 수도 있다. 물가 잡으려다 은행 건전성만 악화시킬 수 있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금융 당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12일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과 함께 한 정례 간담회에서 “SVB 유동성 위기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실물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SVB 파산은 최근 급격하게 예금이 쏠린 국내 은행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금융 전반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부동산 대출 등에도 보다 면밀한 선제적 금융감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