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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처럼 주문 즉시 옷 제작…이틀이면 매장에 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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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옷은 유행이 지나면 돈이 아니라 짐이 됩니다. 상품 발주부터 생산, 매장 진열까지 총 48시간 안에 완료하는 ‘이틀 생산’으로 재고를 최소화하려는 이유입니다.”

고형석 이랜드월드 캐주얼생산팀장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있는 이랜드 스피드 오피스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랜드는 지난해 2월 문 연 이곳에서 협력업체들과 함께 스파오·미쏘·후아유 등 주요 패스트패션(SPA) 브랜드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달 27~28일 이틀 동안 스파오의 캐시미어 스웨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 봤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첫째 날 오전 9시, 스피드 오피스 지하 1층 편직 공장에서는 편직기가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스웨터의 몸통·소매 등을 조각조각 짜내는 공정이다. 이번에 만들어야 할 스웨터는 차콜(회색)·네이비(남색) 각 15장으로, 올가을 인기를 끌 색상을 미리 가늠해보는 ‘컬러 테스트’ 용도였다.

4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편물 조각은 오후 1시쯤 2층 생산 공장으로 올라갔다. 이곳에서 스웨터를 생산하는 협력업체인 쁘뗀느의 이덕희 대표는 “마치 짜장면 만들 듯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옷을 만들고 있다”며 “동대문보다 훨씬 더 빠르다”고 자랑했다.

오후 3시, 비로소 옷 모양을 갖춘 스웨터는 스피드 오피스 근처 외부 업체에서 ‘워싱’ 절차를 거쳤다. 캐시미어를 보들보들한 촉감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후엔 스피드 오피스에서 정교한 다림질로 ‘핏’을 완성하는 작업, 라벨을 부착하는 작업까지 거쳤다.

이튿날 오전 9시 문을 연 스피드 오피스에서는 스웨터의 포장과 최종 검사를 진행했다. 모든 과정을 완료한 스웨터들은 오전 11시 스파오 강남점으로 출발했다.

낮 12시 30분, 스웨터들은 스파오 강남점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주력 판매존’에 자리 잡았다. 소비자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진열해 즉각적인 판매 추이를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박남일 스파오 강남점 셀장은 “이틀 생산 상품이 들어오면 1시간 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고객 반응을 바로바로 살핀다”고 말했다. 이후 이틀간 차콜 판매량은 총 3장으로 반응이 저조했으나, 네이비는 7장이 팔려 올가을 시즌 출시가 확정됐다.

이랜드는 이런 방식으로 월평균 100여 개 디자인의 옷을 만들고 있다. 전체 품목의 약 10%다. 속전속결로 만든 옷은 강남·명동·영등포 등에 있는 ‘안테나숍’ 5곳에서 판매하며 고객 반응을 살핀다. 1년 새 이틀 생산 상품의 적중률(한 달 안에 70% 이상 판매)은 10→30%로 늘었다.

이랜드는 여기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적정 수요를 예측해 재고율을 확 낮추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실적도 승승장구 중이다. 이랜드월드 패션 부문은 지난해 매출 1조6000억원, 영업이익 2700억원을 기록해 창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패션 업계는 재고 관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불황과 소비 위축 우려로 재고 부담이 커져서다. LF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재고자산은 4361억원으로 전년 동기 3282억원 대비 32.9%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섬은 4805억→5597억원으로 16.5%,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895억→3221억원으로 11.3% 늘었다.

‘탄력 생산’ 트렌드도 확대될 전망이다. 통상 6개월에 한 번 신제품을 출시하던 여성복 브랜드들이 최근 매달 혹은 매주 신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급변하는 트렌드와 온라인 위주의 소비 패턴으로 관행이 바뀌었다”며 “여성복의 경우 한두 달 전에도 유행을 알기 어려워 탄력 생산을 통해 재고 물량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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