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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에너지 위기 대응, 긴장 늦추면 안 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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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허윤지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허윤지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40%를 러시아에 의존했던 유럽이 지난해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급격히 늘리면서 공급 역량이 한정된 세계 LNG 현물 시장을 중심으로 가격이 치솟았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 영향으로 난방비 상승과 에너지 공기업 재무 악화 등의 몸살을 앓고 있다. 에너지 시장의 가변성,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전쟁 이후 처음 맞은 지난 겨울은 난방 수요에 따른 천연가스 수급 우려로 시작됐지만, 다행히 유럽은 온화한 날씨로 한시름을 덜었고 세계 시장도 큰 고비를 넘겼다. 지금은 유럽과 동북아시아의 가스 저장 수준이 높고, 화재로 중단된 미국 프리포트(Freeport) LNG의 재가동 승인으로 공급에 일부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임에 따라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올해도 세계 천연가스 시장은 불확실성 속에 잠재적 위기를 품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럽의 LNG 수요가 올해 사상 최고치에 달하고, 지난해 감소한 아시아 수요도 완만하게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전면 중단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완화에 따른 수요 증가 가능성도 압박 요인으로 언급되며, EU는 공동구매와 가격 상한제 등을 통한 안정적인 역내 가스 물량 확보에 힘쓰고 있다.

게다가 EU가 회원국에 제시하는 월별 가스 저장 의무량과 이에 따른 연중 LNG 수요, 동절기 기온 예측의 불확실성 등으로 이른 시점부터 현물 가격이 요동칠 수 있다. 또한, 예기치 못한 LNG 생산설비 가동 중단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공급 차질, 바람·강수량 등에 의한 재생에너지 공급 상황에 민감하게 영향받는 가스 수요를 고려하면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즉, 유럽의 탈러시아 가스 정책에 따른 수급 불안은 현재 건설 중인 신규 LNG 설비 가동 전까지 수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여타 요인에 의해 수급 상황이 언제든 반전될 수 있다. 지금의 일시적인 안정세에 안주했다간 향후 수급 압박으로 고가 LNG를 사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따라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다소 안정된 바로 지금, 우리는 이 기회를 현명하게 활용해 필요 물량을 적절히 계획하고 안정적으로 조달해 다음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보험과 같다. 위기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완충재를 준비하고 비용을 지불하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후에 이를 낭비라고 비난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허윤지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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