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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는 겨우 살렸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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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야구대표팀이 체코를 7-3으로 꺾고 WBC 본선 1라운드에서 2패 후 첫 승을 신고했다. 7회말 두 번째 솔로 홈런을 친 뒤 동료들과 조용히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김하성(등번호 7번). [연합뉴스]

야구대표팀이 체코를 7-3으로 꺾고 WBC 본선 1라운드에서 2패 후 첫 승을 신고했다. 7회말 두 번째 솔로 홈런을 친 뒤 동료들과 조용히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김하성(등번호 7번). [연합뉴스]

모두가 뛰어갈 때 우리만 제자리걸음을 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국 야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무대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지난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WBC 1라운드 B조 2차전에서 일본에 4-13으로 졌다. 양의지의 선제 투런포와 이정후의 적시타로 3-0으로 앞서 나갔지만, 곧바로 선발 김광현이 무너지면서 역전패했다. 이후 점수 차가 벌어지면서 콜드게임 패를 당할 위기까지 몰렸다.

한 수 아래로 꼽혔던 호주전 패배도 실망스러웠지만, 일본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한국의 실력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감독은 “점수 차가 많이 났지만 (승부가) 어느 쪽으로 굴러가도 이상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한국과 일본의 전력 차이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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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들은 예전보다 더 빠른 공을 던졌고, 힘찬 스윙을 했다. 하지만 정교함과 집중력이 떨어졌다. 투수들의 제구는 흔들렸고, 한국의 강점이던 주루와 수비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나라들은 더욱 강해졌다. 호주는 현역 메이저리거가 한 명도 없는데도 장타를 펑펑 때려냈다. 최약체로 꼽힌 체코도 마찬가지다. 회계사·소방관·외판원 등 ‘투잡’을 뛰는 선수들이 수두룩했지만, 공격과 수비·주루에서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15 프리미어12에선 투수 오타니에게 압도당했지만, 결승에서 일본에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중반까지 접전을 펼치다 아깝게 졌다. 그러나 이번엔 콜드게임으로 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대표팀이 WBC 개막을 앞두고 미국 애리조나에 캠프를 차린 것도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이강철 감독의 소속팀 KT 위즈를 비롯한 많은 구단이 미국에 스프링캠프를 차렸기 때문에 대표팀도 미국에서 소집 훈련을 했는데 이게 역효과를 냈다. 공교롭게도 애리조나의 날씨가 좋지 않았다. 대표선수들은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 미국과 한국·일본을 오가느라 지쳐 컨디션이 오히려 나빠졌다. 일본전 선발 후보였던 구창모(NC 다이노스)는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변명이 될 수 없다. WBC는 매번 비슷한 시기에 열린다. 일본도 같은 조건이었다.

그래도 아직 2라운드(8강) 진출의 희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한국은 12일 열린 체코와의 경기에서 7-3으로 승리를 거두고 1승 2패를 기록했다.

WBC 본선에 처음 출전한 체코는 만만찮은 전력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에릭 소가드, 미국 대학에서 뛰는 마렉 흘룹 등을 빼면 상당수 선수가 ‘투잡족’이다. 이들은 다니던 직장에 휴가를 내고 대회에 참가했다. 파벨 하딤 감독은 신경외과 의사다. 그런데도 체코는 중국을 8-5로 꺾었다. 일본전(2-10패)에 이어 이날 한국에 졌지만, 기대 이상의 실력을 발휘했다.

한국은 1회 초 대량득점으로 승기를 잡았다. 1번 박건우가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이정후가 선제 적시타를 날렸다. 박병호와 강백호의 연속 안타가 나오면서 2-0을 만들었다. 2사 만루에서 김현수가 밀어내기 볼넷을 골랐고, 토미 현수 에드먼이 친 땅볼을 상대 유격수가 잡지 못해 5-0까지 달아났다. 2회엔 김하성이 대회 첫 안타를 홈런으로 터트렸다.

박세웅

박세웅

선발 박세웅은 4회까지 삼진 6개를 솎아내며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았다. 5회 초 선두타자 마르틴 체르벤카에게 2루타를 허용했지만, 다음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박세웅은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4와 3분의 2이닝을 무실점(1피안타 8탈삼진)으로 막았다. 탈삼진 8개는 WBC 단일 경기 최다 탈삼진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박세웅은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게 힘들었다. 내일 중국전에서 승리한 뒤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8강에 오르기 위해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13일 경기에서 체코가 호주를 이겨야 하고, 한국은 중국을 꺾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호주·한국·체코가 2승 2패로 동률을 이룬다. 이 경우 승자승, 최소 팀 실점-최소 팀 자책점-최고 팀 타율-제비뽑기 순으로 우열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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