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원조 지젤’에 압도…첫 흑인 에뚜알 탄생엔 기립박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지난 11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알브레히트역의 기욤 디옵(왼쪽)과 지젤역의 도로테 질베르가 공연 중인 모습. [사진 LG아트센터]

지난 11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알브레히트역의 기욤 디옵(왼쪽)과 지젤역의 도로테 질베르가 공연 중인 모습. [사진 LG아트센터]

30년 만에 내한한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이 ‘원조 지젤’의 저력을 뽐냈다. 주인공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연기는 물 흐르는 듯했다. 특히 주인공 지젤 역을 맡은 POB 간판스타 도로테 질베르는 음악과 하나 된 듯 자연스럽고도 유려한 연기를 펼쳤다. 11일 오후 2시 공연을 감상한 관객들은 POB 354년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에뚜알(POB 최고 등급 무용수)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행운도 누렸다.

POB는 이날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이번 내한의 공연 일정을 모두 마쳤다. 오후 2시 공연에서 에뚜알 도로테 질베르가 지젤, 23살의 신예로 지난해 말 쉬제(군무와 독무를 겸하는 무용수)로 승급한 기욤 디옵이 알브레히트 역을 맡아 호연했다.

질베르는 2007년 24살의 나이로 에뚜알이 된 이후 16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킨 POB의 간판스타다. 오랜 시간 주연을 맡은 그의 노련함은 시골 처녀 지젤 역할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연인 알브레히트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젤이 정신을 잃는 ‘매드씬’은 1막의 하이라이트. 질베르는 눈동자 가득 눈물이 고인 채 손을 떨며 배신당한 여인을 연기해냈다.

낭만발레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2막에서는 질베르의 안정적인 발란스(한쪽 발끝으로 서서 멈추는 자세)와 귀신이 허공에서 움직이듯 가볍고 평온한 부레부레(두 발끝으로 선 상태에서 잰걸음으로 이동)가 돋보였다.

디옵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알브레히트를 연기했지만 2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32회 앙트르샤시스(제자리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두 다리를 앞뒤로 빠르게 교차하는 동작) 등 고난도 기술을 유려하게 선보였다. 앙트르샤시스 20회를 넘기고서도 흐트러짐 없이 도약하는 젊은 무용수의 기예에 객석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디옵은 뛰어난 표현력과 신체 조건으로 일찍부터 ‘차기 에뚜알’로 불렸다. 입단 3년 차인 2021년부터 전통적으로 에뚜알에게 주어지던 주연 역할을 배정받았다. 군무 리더인 코리페에서 쉬제로 승급한 지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에는 ‘백조의 호수’에서 남자 주인공 지그프리드 왕자역을 맡으며 프랑스 발레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내한 공연은 디옵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11일 공연 직후 호세 마르티네즈 POB 예술감독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에뚜알 지명을 받았다. POB 무용수들은 까드리유(군무)·코리페·쉬제·프리미에당쇠르(제1무용수)·에뚜알의 5개 계급으로 구분된다. 디옵은 쉬제에서 프리미에당쇠르를 건너뛰고 두 단계를 승급해 입단 5년 차에 에뚜알이 됐다. 흑인 무용수가 에뚜알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르티네즈 감독이 디옵을 새 에뚜알로 지명하는 순간 객석에선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공연에서는 두 주연 무용수뿐 아니라 50여명의 군무진 모두가 윌리(처녀귀신)의 사후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려내며 세계 최고(最高) 발레단의 기량을 뽐냈다. 발레 ‘지젤’은 시골 처녀 지젤과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의 계급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다.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세계를 그려 낭만발레로 분류된다. POB는 1841년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의 전신인 로열 음악 아카데미에서 ‘지젤’을 초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