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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치다 넘어져도 학폭…"'더 글로리'는 쉬워요" 변호사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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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즉시분리 제도를 이용한) ‘맞학폭’이 엄청 들어옵니다. 신고받아 분리된 가해 학생 부모가 ‘우리 아이도 받았던 놀림을 신고하겠다’고 하는 거에요. ‘쟤도 격리시켜달라’ 하는…”

2015년부터 매년 수천 건의 학교폭력 사건에서 학교 및 교육지원청 측 법률 자문을 맡아 온 변성숙(41) 경기도교육청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의 말이다. 현행법상 학교폭력 신고가 이뤄진 경우 피신고 학생을 최대 3일까지 도서실 등으로 분리시켜야 하는데,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역으로 신고해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변 변호사는 “사건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피해자(신고학생) 측이 원하면 무조건 분리시키는 법의 맹점을 활용한 것”이라며 “(피해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중요한 시기에 (교실에서) 배제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당초 피해 학생들도 쓰던 방법이었다고 한다. 변 변호사는 “쪼개기 신고가 많았다. 그동안 입었던 피해가 있다면 오늘은 한 건만 신고하고, 며칠 지나서 또 신고한다“며 “피해 학생이 여러 명이면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이런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동일한 피해 학생이 동일한 가해 학생과 최초 분리 이후, 분리 이전 사안에 대해 연속적으로 신고할 경우 최초 1회 분리만 실시한다’고 지침을 내린 상태다.

지난해 교육부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를 봤다는 학생은 약 5만3800명으로, 전체 학생의 1.7% 수준이다. 2020년 2만6900명(전체 학생의 0.9%)에서 크게 높아진 수치다. 학생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 심의 결과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청구한 건수도 2020학년도 670건에서 2021년 1017건으로 51.7% 늘어났다. 학교폭력 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들이나 행정사 등이 나타나며 법조계에 ‘학폭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변 변호사의 설명이다.

“학폭 정의, 지나치게 광범위”

학교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학교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변 변호사는 학교폭력의 정의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을 한 원인으로 꼽았다. 현재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을 ▶학교 안팎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상해부터 협박, 따돌림 등에 의해 ▶신체ㆍ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변 변호사는 “예를 들어 화장실 앞에서 놀다가 한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가려 하고, 한 사람은 나오려고 옥신각신 하면서 잡아당기다 넘어져 다친 경우, 폭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아이들끼리 장난치다 그런 경우 통상적으로 사회에선 사고로 볼 가능성이 크지만, 학교에선 피해가 있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다칠 줄 알면서도 장난을 친 것 아니냐’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2020년 모 중학교 3학년생인 A군은 쉬는 시간에 동급생인 B군과 ‘밀치기 게임’을 하던 중 B군을 잡고 넘어뜨려 다리 골절을 입힌 건 등으로 학교 폭력으로 신고돼 관할 심의위에서 A군에게 접근금지 등 처분이 의결되기도 했다.

그는 “드라마 ‘더 글로리’ 같은 사건은 분명한 학교폭력이라 오히려 전학 등 조치를 내리는 건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학교 폭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미한 사안”이라며 “이런 사건은 일상적인 갈등이나 분쟁과 구별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심의위가 학교폭력 사건의 경중에 따라 가해 학생에 부과하는 판정 점수 역시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심의위는 학교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과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화해 정도 5가지 항목에 대해 각각 0~4점의 점수를 부여해야 한다. 총점이 1~3점이면 가해학생에 대해 서면사과 조치를, 16~20점 만점이면 전학이나 퇴학 처분을 내리게 된다. 문제는 얼마나 반성을 해야 몇 점을 주는지 등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변 변호사는 “같은 사건이어도 심의위 소위원회에 따라 판정이 다르다”며 “판정 기준이 명료하지 않고, 위원들 개개인의 생각마다 판정이 다르다”고 했다.

“분쟁 조정 강화해야”

변성숙 경기도교육청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 사진 경기도교육청

변성숙 경기도교육청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 사진 경기도교육청

변 변호사는 “(피해가) 심각한 사건의 경우 강하게 대응하는 게 당연하지만, 경미한 사안의 경우 중요한 건 어떻게 아이들을 다시 학교 공동체에 돌아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게 할 지에 대한 것”이라며 “사건 접수 초기 학교에서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학교폭력 분쟁 조정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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